가정과 직장에 모두 충실?…'에너지' 분배가 관건

“아빠, 오늘 또 늦게 들어와?”
“응, 오늘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
“어떻게 아빠는 매일 회식이야? 우리하고는 같이 외식한 지도 너무 오래됐는데.. 너무 하시는 거 아녜요?”
“미안해, 요새 연말이라 바빠서 그래. 엄마하고 맛있는 거 사먹어..”
“일년 내내 늦게 오시면서.. 그리고, 엄마도 늦게 온단 말이야’..”

우리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심한 스트레스와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두 삶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점점 고갈되어 가고, 제한된 시간을 양쪽 삶에 적절히 분배하려는 시도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와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끝없이 복잡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 깨끗하게 손을 털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시간에 사무실을 떠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2000년 이후부터 약 80%의 가정이 맞벌이 부부로 구성되어 있다. 불과 20%정도 수준이던 19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계속해서 이러한 트렌드는 지속될 거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오늘날 세계사회의 표준이 되어 가고 있다.

한편, 2014년 서울의 맞벌이 부부의 비중은 전체가구의 43.1%, 외벌이 가구비중은 48.8%, 둘 다 일을 안 하는 가구는 5.1%를 차지 했다. 연 가구소득이 4000만원을 넘는 가정은 50%이상이 맞벌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맞벌이를 하는 이유는 저소득층에서는 생활비를 목적으로 한다는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 가구당 전체 소득이 6000만원이 넘어가는 경우에는 ‘각자 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아서’라는 답변이 가장 높았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이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친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흐름 때문에 남녀의 상호작용 방식이 바뀌었고 가족이 생활하고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남녀 모두가 인정받고 만족을 느끼기 위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책임을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감당해 나갈 것인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남녀 간에 커다란 차이가 없다. 물론 여자들이 더 많은 역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지만, 일에 대한 부담과 사적인 시간의 부족을 느끼는 것은 남녀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별이해지능(Gender Intelligence)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일과 삶의 불균형을 묘사하는 방식에 남녀간의 차이가 있다. 여자들은 일상생활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다고 느끼는데 비해, 남자들은 끊임없이 책임을 완수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고 하면, 서로 경쟁하는 두 삶에 시간을 균등하게 배분해야 한다거나 어떻게든 가장 적절하게 시간을 나눌 방법이 있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여자들에게는 특히 더 어렵다.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쉽게 생각을 분리해내거나 순차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상충되는 생각과 문제를 한번에 처리하려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떠안게 되고, 그 와중에도 어느 쪽에도 충분히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일터에서나 집에서나 충분히 헌신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에 비해,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쉽게 서로 상충되는 생각들을 분리하고 떼어내서 한 번에 하나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문제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들이 삶에 끊임없이 불균형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가정보다는 일에만 집중하려 한다. 사생활을 포기하고 장시간 근무하며 결과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남자들의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완벽하게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시도 할 때마다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정된 시간을 경쟁하는 두 개의 삶에 쪼게 넣으려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

단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면, 항상 균형을 찾고 유지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결국 똑같이 분배되는 것은 스트레스와 걱정뿐이고,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일과 삶의 분배’가 아닌 ‘일과 삶의 조화’를 추구한다면 두 세계를 하나로 받아들여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일과 삶을 분리시키는 게 아니라 더 조화로운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조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할애되는 시간보다는 그 순간의 에너지의 분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배당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계산하기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아주 적은 시간이라고 진정성을 갖고 가족과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조화의 첫걸음인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자녀와 질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평상시에 아무런 노력이나 생각도 안 하다가, 단지 시간만 있다면 의미 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을 가족들과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과연 시간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