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법적분쟁 극적합의, 오너 李-具 '통큰 결단'

삼성전자 서초사옥(왼쪽)과 여의도 LG트윈타워 전경/사진=자료DB

재계의 양대 라이벌 삼성과 LG가 '세탁기 파손 논란' 등 상호간의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앞으로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법적 조치 대신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기로 했다. 글로벌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 간의 잇따른 소송전이 소모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LG, 3개 사안 5건 소송 전격 합의=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대표이사 권오현)·삼성디스플레이(대표이사 박동건)와 LG전자 (90,800원 ▲200 +0.22%)(대표이사 구본준)·LG디스플레이 (10,320원 ▲40 +0.39%)(대표이사 한상범)가 31일 "상호 진행 중인 법적 분쟁을 모두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공동 발표했다.


삼성과 LG 양측은 "현재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 대해 고소 취하 등 필요한 절차를 밟고 관계 당국에도 선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인 △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의 삼성세탁기 파손 사건을 비롯해 △삼성-LG디스플레이 임직원간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유출 △LG전자 임원의 삼성 시스템에어컨 기술유출 등 3개 사안, 5개 소송건이 사실상 매듭을 짓게 됐다.

최근 가장 크게 불거진 양측 간의 분쟁은 바로 '세탁기 파손 논란'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유럽가전전시회)를 앞두고 현지 가전매장에서 조 사장을 비롯한 LG전자 임원진이 자사 크리스탈블루 세탁기를 고의 파손했다는 혐의로 이들을 고소했다. 이에 LG전자도 삼성전자 임직원을 증거위조·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맞고소했다.


검찰은 기소 전에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 사건이 양측 간 '자존심 싸움' 양상으로 흐르면서 결국 결렬됐고, 재판으로 넘겨진 상황이었다.

가전과 함께 삼성과 LG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분야인 디스플레이에서도 법적 분쟁이 잇따랐다. 'OLED 기술유출'을 놓고 쌍방 고소한 사건이 계속 이어졌다.

지난 2월 6일 수원지법은 삼성의 OLED 기술을 LG로 빼돌린 삼성디스플레이 출신 연구원과 이를 건네받은 LG디스플레이 임직원 등 4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또 같은 달 13일 수원지검 특수부는 LG디스플레이의 대형 OLED 관련 영업비밀을 주고받은 혐의로 LG디스플레이 (10,320원 ▲40 +0.39%) 협력업체 A사장과 삼성디스플레이 B씨 등 임직원 4명을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판세를 보면 삼성과 LG가 서로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셈이다.

이밖에 지난해 8월에는 삼성전자가 국책 연구과제 공모에 참여하면서 제출한 자사의 시스템에어컨 관련 기술 정보를 빼낸 혐의(부정경쟁방지법 위반)로 LG전자를 고발하면서 관련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 갈등시 대화로…오너들 의중 반영된듯=양측은 앞으로도 사업 수행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생길 경우 법적 조치를 지양하고 대화와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키로 했다. 사실 사돈지간인 두 그룹의 해묵은 갈등은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삼성전자가 국내 전자산업에 진출하면서부터 사돈기업인 LG(당시 금성사)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 이후로도 양측은 전자업계의 의미 있는 변곡점마다 신경전을 멈추지 않았다.

두 회사 관계자는 모두 "이번 합의는 엄중한 국가경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데 힘을 모으고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향상시키는데 주력하자는 최고경영진의 대승적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이나 최고 경영층의 직접적인 만남 여부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측 모두 필요에 따라 '타협'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면도 있다"며 "계속 물밑접촉을 해오다 이번에 합의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통큰 결단'은 오너들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일부 계열사 간의 분쟁을 단순 합의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룹 전반의 대응 방침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두루 논의했다는 점에서다.

현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으로 삼성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또 두 그룹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만큼 정부에서도 비공식적인 루트로 중재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