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엘론 머스크 같은 '미래형 CEO'가 없는 이유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지난 8일,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인문학콘서트. 'SF(공상과학)로 보는 21세기'라는 흥미를 끄는 제목의 특강이 열렸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정중앙에 섰다. 그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SF전문잡지(환타스틱) 발간인이다. 24권을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탓에 이 잡지를 실제로 본 이는 거의 없지만, 요즈음 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그래비티(2013년)'와 '인터스텔라(2014년)'의 잇단 흥행성공으로 공공기관, 대학가, 기업 등에서 과학 관련 초청 강연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탓이다.

준비한 프리젠테이션(PPT) 화면에선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후편인 '이노센스' 포스터가 나왔다. 인간의 두뇌는 전자두뇌로 바뀌고, 육체는 기계로 대체된 미래 사회 사이보그를 다룬 스토리로, 국내에선 지난 2004년 소개됐다. "이 만화 속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범죄학자 '해러웨이'는 미국의 사회학자 도나 해러웨이를 모델로 삼았죠."

해러웨이는 1985년 자신의 논문인 '사이보그 선언'을 통해 새로운 몸틀(기계와 인간 혼합체)의 탄생이야말로 성차별을 없앨 수 있는 실천적 대안임을 강조해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줬던 인물이다.

박 대표는 이어 "케빈 워릭 영국 레딩대학 석좌교수가 자신의 팔 신경에 실리콘칩을 이식해 넣어 자신의 위치 신호를 컴퓨터로 전송하는 실험에 성공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화 속 상상이 현실에서 진행 중이거나 이미 이뤄진 사례들을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했다.


강연 1시간 전 박 대표를 따로 만났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삼부작 중 2편(1989년)에 나왔던 미래가 바로 2015년입니다. '영화 속 전망과 실체는 어떤 차이가 있나?'라는 주제가 근래 자주 눈에 띄죠. 그렇다면, 과거 SF들이 공통적으로 예견한 2015년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박 대표가 질문을 던지고, 우리나라 과학기자 1세대가 등장한 때라고 힌트도 줬다.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하자 그는 "우주시대"라며 곧바로 설명을 이어갔다.

"1957년 옛 소련이 세계 첫 인공위성(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를 맞게 되죠. 미국은 교육·군사·과학기술 부문 개혁 필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1년 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설립됐어요. 스푸트니크 쇼크는 한국에도 영향을 줬죠. 학생들의 장래 희망으로 우주과학자가 많았고, 아마추어 로켓·천문관측 동아리가 속속 생겨났죠. 다시 말해 우리나라도 제법 긴 과학문화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SF가 '미래를 보는 창'이라고 강조했다.

"SF의 핵심 정서는 놀랍고 신기하다는 느낌의 '경이감', 핵심 미덕은 '개념적 돌파'이죠. 이를 갖춘 '미래형 CEO(최고경영자)'들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요.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이자 페이팔(전자결제), 테슬라모터스(전기차), 스페이스X(우주로켓)의 창업자인 엘론 머스크 회장을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겠죠." 미국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테슬라모터스 기업가치가 오는 2025년 애플 시총과 맞먹는 7천억 달러(76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엘론 머스크의 대담한 도전'이라는 번역서는 그가 십대 시절 SF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서술했다. 그가 읽은 SF소설은 성인이 된 후 사업아이템으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미래형 인재 양성을 위해 제도권 교육 안에서 SF를 읽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10년 전 미국과 영국, 호주 등 3국을 차례로 돌며 SF(공상과학)를 수록한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 실태 조사를 한국과학창의재단 지원을 받아 진행한 바 있다.

"장편은 미래 기술을 서술한 장 일부를, 단편은 통으로 교과서에 수록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SF가 실린 역사가 없죠. 영화 '반지의 제왕'이 대학입시문제 지문으로 출제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것 같은 데, 그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