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 적발금액 年6000억인데...잠자고 있는 특별법

#. 공포영화에서 나올 법한 보험범죄가 경기도 포천에서 벌어졌다. 보험금을 노리고 전 남편과 시어머니, 재혼한 현 남편 등 3명을 독극물로 살해한 A씨의 범행이 수 년 만에 발각됐다. 첫 희생자인 전 남편은 2011년 A씨가 맹독성 제초제를 섞어둔 음료수를 마시고 즉사했다. A씨는 2012년 현 남편과 재혼, 같은 수법으로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제초제 음료수를 먹였다. 이 사건은 병원 치료 중 숨진 것으로 처리돼 수사기관의 의심을 받지 않았다.

A씨는 5개 보험사에서 8억7000만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최근에야 거액의 보험금 수령을 수상히 여긴 보험사의 제보로 잔인한 보험범죄의 꼬리가 잡혔다. A씨는 첫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에게도 제초제를 먹여 입원치료비 명목으로 보험금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거액의 보험금으로 골드바를 구입하는 등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


초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농약 연쇄 살인'이 올해 초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공포영화에 나올법한 잔혹한 보험범죄는 해마다 심심찮게 터지고 있다. 보험사기는 갈수록 흉포화 되고 있으며, 심지어 청소년이 낀 보험사기도 늘었다. 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다. 대부분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난다. 전문가들은 몇 년간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사기방지특별법' 통과가 보험사기 근절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적발금액만 6000억…보험사기 추정액 3조=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5997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5.6% 증가했다. 적발금액은 보험사기 추정액인 3조2000억원(공제 제외)의 18.7%에 불과하다. 적발된 금액이 전체 사기의 5분의 1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게 보험업계의 분석이다.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지난해 8만4385명에 달했다. 2012년 8만3281명, 2013년 7만7112명 등 해마다 7~8만명이 보험사기로 적발이 됐다. 적발금액은 2012년 4533억원에서 2013년 5189억원으로 5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6000억원에 육박했다.


보험사기 적발을 위해 보험사나 수사당국이 열심히 '뛰고' 있지만 보험사기범들은 '날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사기는 조직화, 흉포화, 지능화, 국제화, 사전계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개인의 단독법행이 아닌 일가족, 조직폭력배, 전문브로커 등에 의한 조직적인 범행이 증가하고 있으며, 친족간 살해, 장애인 살해 등 잔혹한 보험범죄가 경제침체를 계기로 급증 추세다.

특히 '제초제 연쇄살인' 사건과 같이 고액의 보장성보험에 중복 가입한 뒤 단일사고로 거액의 보험금을 챙기는 보험범죄도 늘었다. 최근에는 해외에 나가 보험사고를 조작, 보험금을 청구하는 등 국제화 양상도 나타났다. 연성사기로 분류되는 '사고 후 피해과장유형'은 줄고 있는 반면 고의·허위사고 등 사전계획적인 경성사기는 해마다 늘고 있다.

◇보험사기 피해자는 전국민…결국 보험료 인상으로=보험사 뿐 아니라 보험가입자도 보험사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우체국, 수협공제를 포함한 민영보험의 보험사기로 인해 가구당 20만원(1인 7만원·2010년 기준)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06년 가구당 14만원 대비 42.8% 늘어난 수치다.

보험사기는 보험사의 3대 수익원 중 하나인 위험률차익의 악화를 가져와 결국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보험 측면에서 보험사기 중 상당수가 병·의원 등 의료기관의 과잉진료 및 허위입원 등과 관련이 있어, 보험사기가 증가할수록 건강보험의 지출도 늘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5년~2008년 중 요양기관의 부당이득 적발금액만 454억원에 이른다. 민영보험범죄와 연관된 건강보험 부정청구 금액은 연 2920억 ~5010억원으로 추정(2012년)된다. 실제로 2001년 이후 건강보험료는 꾸준히 인상됐다. 2013년은 전년대비 7.26% 상승했다.

보험사기는 전파성이 강하고 모방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장기간 경기 침체를 틈타 사회전반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청소년에게도 악영향을 끼쳤다. 10대 청소년이 연루된 보험사기를 분석할 결과, 2009년에는 청소년 508명이 연루됐으며, 2013년에는 1264명으로 237%나 급증했다.

◇솜방망이 처벌..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첫걸음=진화하는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 정부는 '정부합동 보험범죄전담 대책반'을 운영 중이다. 검·경찰, 국토부, 금감원, 심평원, 생·손보협회 등 7개 기관이 뭉쳐 2009년 7월 이후 총 367건, 1510명(편취금액 936억원)을 적발했다.

경찰은 매년 3월~5월, 8월~10월 2차례에 걸쳐 보험범죄 특별단속을 실시한다. 금감원은 지난 2014년 보험사기 근절대책을 수립, 보험범죄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및 인프라 강화를 추진 중이다. 생명보험사들은 2002년부터 보험사기조사 전담 특별조사팀(SIU)를 꾸렸다. 현재 19개사가 운영 중이다.

이런 노력과 더불어 처벌 수위를 높여야 보험사기가 근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사기범의 벌금형 선고율(2012년, 51.1%)은 일반사기범의 선고율(2011년, 27.1%)보다 2배나 높다. 반면 징역형은 22.6%에 그치고 있는데 그나마도 이 비율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채한기 생명보험협회 보험범죄방지팀장은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보험사기를 보험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며 "보험사기에 대한 별도의 처벌규정을 신설하고 보험사기자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몇 년 째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사기방지특별법 통과가 보험사기 근절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법은 보험사기 처벌규정 및 보험유관기관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으며 지난 2013년 8월 발의돼 국회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