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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핫트렌드]가난이 뇌 구조도 변화시킨다

<11>빈곤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가 문제

사이언스 핫트렌드 머니투데이 이성규 객원기자 |입력 : 2016.01.2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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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미래에는 어떤 분야가 유망할까? 미래 주도권의 열쇠가 될 원천기술은 무엇일까? 사물인터넷(IoT), 소셜미디어, 3D 생산, 바이오신약 등 모든 산업분야의 게임 규칙을 확 바꿀 새로운 R&D 트렌드를 짚어봅니다.
가난이 아이들의 뇌 구조마저 변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발표됐다/사진=morgueFile free photo&lt;br&gt;
가난이 아이들의 뇌 구조마저 변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발표됐다/사진=morgueFile free photo<br>


웬만큼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선진국에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비만인 경우가 많다. 이는 '에너지 불확실성'이라는 이론으로 설명된다. 굶주릴 수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은 더 많은 칼로리를 비축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게 에너지 불확실성 이론이다. 실제 실험에서도 '역경' 등의 어려운 상황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노출된 사람들의 경우 고칼로리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은 사망률과도 직결된다. 미국 클리블랜드 진료소에서 장기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나이 및 성별, 흡연 여부 등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사망할 가능성이 배 이상 높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소득 불균형은 유럽에서 영아 사망률을, 미국에서는 노인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의 사망률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된다.

아이들의 키도 부모의 재력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연구진이 퀘백 시에서 장기간에 걸쳐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한 아동은 엄마의 키 같은 유전적 요소에 상관없이 같은 또래의 아동에 비해 키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모든 국민들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아동을 돌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 선진국이지만, 가난은 이처럼 아동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가난할 경우 아이들의 뇌 구조마저 변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발표됐다.

미국 워싱턴주립대학의 디나 바치 교수팀이 가정환경을 장기간 추적한 7~15세 어린이 105명에 대해 MRI로 촬영한 뇌 사진 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보다 뇌의 해마 및 소뇌 편도체의 신경회로 연결상태가 약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미국 심리학회지 온라인판에 게재한 것.

연결상태가 약하다는 건 그만큼 기능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해마는 기억 및 학습, 편도체는 스트레스 및 정서와 관련된 부위다. 즉 가난한 집 아이일수록 학습성과 및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우울증이나 반사회적 행동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연구진의 조사 결과 취학 연령 이전에 가난했던 아동일수록 취학 이후에 우울증 증상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난 것으로 드러났다.

◇부잣집 아이들의 대뇌피질 표면적이 더 넓어

지난해 3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지에 발표된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모집한 3~20세의 어린이 및 청소년 1000여 명을 대상으로 MRI를 촬영한 결과, 부모의 소득 및 교육수준의 차이가 뇌 크기 및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부모의 연간소득이 15만 달러 이상인 어린이들은 2만 5000달러 미만인 어린이들보다 대뇌피질의 표면적이 6% 더 넓었으며, 대학 졸업자의 자녀들은 고등학교 졸업자의 자녀들보다 대뇌피질의 표면적이 3% 더 넓은 것으로 드러난 것.

언어 및 읽기 등 고도의 인지처리에 관여하는 영역인 대뇌피질의 크기는 부분적으로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생의 경험이 축적될수록 성장하기도 하는 부위다. 연구진이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기억력 등을 측정하는 인지능력 검사를 한 결과, 대뇌피질의 표면적 크기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부모의 소득 및 교육수준이 뇌의 크기 및 인지능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

인류학자 루이스 부부가 쓴 '산체스네 아이들'은 멕시코시티의 빈민가에서 한 가족의 생애를 4년에 걸쳐 생생히 기록한 저서이다. 거기에 등장하는 12세 소녀 과달루페는 자신의 초경이 가난 때문에 생긴 것으로 여긴다. 그 나이가 되면 누구나 초경을 겪기 마련이지만, 과달루페는 가난한 사람만 그런 일을 겪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중국 속담에 '가난하면 뜻이 짧다'는 말이 있다. 그럼 가난이 정말 인지능력과 판단력을 떨어뜨리는 것일까. 프린스턴대학 연구진이 이를 알아보기 위해 부자와 가난한 이를 대상으로 자동차 수리비용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자동차 수리비용이 저렴할 때는 인지능력이 모두 좋았지만 자동차 수리비용이 비쌀 경우 부유층은 변함이 없으나 빈곤층은 인지 테스트에서 악화된 결과를 보였다. 즉, 돈이 부족하다 보니 인지능력이 떨어져 오히려 재정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이 수입의 대부분을 사탕수수에 의존하는 인도의 농부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사탕수수 수확은 1년에 한 번 하므로 수확 이후엔 부유하지만 수확 이전엔 가난하다. 인도 농부들은 수확 이후엔 인지 테스트에 문제가 없었지만 수확 이전에는 인지능력 저하를 보였던 것. 즉, 뇌의 인기기능 저하는 가난 때문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로 인해 비롯되는 문제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니코야 반도의 장수 비결

삼면이 태평양으로 둘러싸인 코스타리카의 니코야 반도는 그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평균 수명이 높은 장수촌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코스타리카는 개발도상국으로서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이 매우 적으며, 니코야 반도는 코스타리카 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지역이다.

이런 곳이 어느 부자 나라의 사람들보다 장수하는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미국 지리학협회의 후원으로 집중적인 조사가 실시됐다. 니코야 반도 주민들의 DNA를 채취해 염색체의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한 결과, 코스타리카 국민보다 평균 81bp가 긴 것으로 나타난 것. 텔로미어는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하는 정확한 표지로 사용되는데, 길이가 길수록 오래 산다.

그러나 니코야 반도 주민들의 식습관은 코스타리카 국민 전체의 식습관과 별로 다르지 않았으며, 비만이나 혈압 같은 건강지표들은 오히려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연구진은 니코야 반도 주민들의 장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이유가 있다면 일반적 통념과 달리 '가난'이 니코야 반도 주민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요인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가난한 생활 방식과 또 그 가난으로 인해 다른 어느 사회보다 강력한 가족 간 및 사회적 연대를 이루고 사는 것이 바로 장수의 비결이라는 결론이다. 즉, 모두가 가난한 사회에서는 가난이 건강 유지의 강력한 무기가 되는 셈이다.

만약 니코야 반도에서 부자와 가난한 집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뇌 구조 및 인지능력 검사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가난한 집 아이들의 뇌 기능과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건 소득 불균형이 큰 사회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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