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올라 짜증난다고요? 이제 키워서 피우세요"

김소철 작가가 마련한 '염리동 담배센터'에서 담배연구회 회원들이 모여 담배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김소철 작가 제공

#얼핏 보면 나물 말린 모양이다. 살살 뜯어내면 초콜릿향과 커피향이 섞인 진한 향이 묻어나온다. 잘게 썬 갈색빛의 이 나뭇잎을 필터가 달린 담배튜브 속에 채워 넣는다. 이렇게 ‘수제’ 담배가 만들어졌다.

정부의 담배정책에 대한 불만을 ‘예술’로 승화한 이가 있다. 자신을 ‘행동주의적 예술가’로 분류하는 젊은 작가 김소철씨(32)는 담배가격 인상이 한창 논의됐던 2013년 가을, 직접 담배를 재배하고 만들어 피우는 방법을 택했다. 수제 맥주처럼 자신이 담배에 필요한 원재료를 가지고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시작은 담배’.

김소철 작가/사진=이미영 기자

김 작가는 최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그의 담배 프로젝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의 프로젝트를 후원하면 담배 재배에 필요한 재료들을 준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변화를 이끌어내 보자는 취지다.

2만원 이상 후원하면 담배 재배에 필요한 재료를 담은 플라스틱 박스를 받아볼 수 있다. 이 상자 안에는 그가 2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든 담배 재배 매뉴얼도 함께 들어있다.

지난 5일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SeMA 블루 2016 ‘서울바벨’ 전시회를 통해 그의 생각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였다. 김 작가는 흡연자다. 하지만 단순히 담뱃값이 아까워서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아니다.


김 작가는 “담배 프로젝트를 생각한 건 2013년 하반기였어요. 정부가 담배가격을 갑작스럽게 올리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며 “이때 불현듯 담배회사에 대한 문제점도 함께 생각하면서 담배와 관련한 일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세금을 걷는 건 문제가 안되지만 정부의 일방성과 함께 담배회사가 만드는 담배의 경우 40%가 화학물질로 이뤄져 있다는 게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런 부분을 해소하는 게 직접 담배를 만들어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수제맥주나 수제초콜릿처럼 남이 만든 것을 구매할 수 없는 상황도 함께 작용했다. 김 작가는 “2001년 전매청이 없어지고 담배회사가 민영화되면서 담배 재배와 모종 관리에 대한 규제가 완화돼 만들어 파는 것에 대한 규제 외에는 없다”며 “자신을 위해 개인이 직접 만들어 피우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 작가에 따르면 직접 재배한 담배에 필요한 비용은 시중 제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재배를 위한 준비물이 비교적 간단한데다 집에 있는 도구들을 활용해 담배를 충분히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 비용은 대략 10만원 안팎.

김소철 작가가 담배 제작 매뉴얼에 제시한 담배 제작 순서

통상 3월에 파종해 9월까지 자란 후 수확한다. 담배 꽃이 진 자리에 깍지가 남는데 깍지에서 600개에서 1000개의 씨앗이 나와 무한대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 담배 맛도 훨씬 좋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처음엔 길들여지지 않은 맛이기도 하고 시중 담배처럼 잘 빨리지 않아 불편하지만 담배 향이 더 진하고 목에 부담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입소문을 타고 전해졌다. 김 작가는 지난해 자신의 작업실을 ‘염리동 담배센터’로 정하고 담배 연구 회원들을 모집했다. 흡연자는 물론 비흡연자들도 관심을 보였다. 놀랍게도 회원 중 70%는 여성이다.

김 작가는 “담배를 직접 피우지 않아도 직접 자신이 재배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호기심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담배연구회 회원들이 담배를 재배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김소철 작가

하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담배를 실제로 재배하고 만드는 과정을 시도한 사례가 드물었다. 그는 해외에서 담배를 직접 만들어 피웠던 사례들을 수집했다. 심지어 영국에서 50여년 동안 조합 형태로 담배를 직접 재배해 생산했던 곳도 방문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확대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해 보고 싶다는 계획도 야심차게 밝혔다. 김 작가는 “사회적으로 견제 역할을 하면서 경제적 비용도 줄이며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실험적이라고 본다”며 “담배가 협동조합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에 ‘시작은 담배’라고 프로젝트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예술이 정치적이지 않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예술도 결국 세상과 소통하고 그 안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며 “내가 하는 예술활동을 통해 작은 변화라도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