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에서 중요한 '주관'의 작동

최근 스타트업과 예비창업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창업 경진대회가 많이 열린다. 심사위원으로 종종 참석하는 필자는 채점 결과를 집계할 때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한다.

가령 심사위원 10명이 3팀의 참가자를 평가한다면 모두에게 고르게 2위 점수를 받은 한 팀과, 5명에게 1위 점수를 받았지만 5명에게 최하위 점수를 받은 두 팀의 최종 순위는 어떻게 될까. 대부분 대회의 채점 방식에 따르면 고르게 2위 점수를 받은 팀이 우승할 가능성이 높다.


채점 방식에 대해 논쟁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단순 점수 합산 방식이든 순위표 가중치 방식이든 심사 후 돌아오는 길에 늘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 스타트업 투자에선 상당히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경진대회와 현실은 다르다.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일수록 초기 단계에서 논란이 많다. 투자자나 평론가들이 볼 때 평가가 극명히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다수가 평이하게 좋은 점수를 주는 스타트업들은 말 그대로 무난한 수준의 횡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통계학에 '타입1 에러'와 '타입2 에러'라는 개념이 있다. 비유하자면 '타입1 에러'는 실패할 스타트업을 성공할 것이라고 오판해 투자하는 것이다. '타입2 에러'는 성공할 스타트업인데 실패할 것이라고 오판해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각각 투자 실패와 기회 상실을 의미한다.


스타트업 초기 투자에서 객관이 많이 작용할수록 투자 실패를 두려워 하고, 주관이 많이 작용할수록 기회 상실을 두려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가 또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주관적인 의견을 개진할 때에도 최소한의 객관적 논거는 갖고 있다. 따라서 평가나 의사결정 체계에서 주관이 활발히 발현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돌아 봐야 한다.

많은 투자사들이 그렇듯 필자의 회사도 투자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파트너 만장일치 제도를 상당 기간 동안 채택했다. 그런데 같은 만장일치라도 분위기가 중요하다. 발제하는 사람에게 "투자 실패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부담을 주는 정서에 기반한 토론 문화와, 발제자가 "기회가 사라지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냐"고 지적하는 상황에서의 토론은 성과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필자의 회사에선 후자에 주안점을 뒀다.

투자 대상의 성과와 운명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자와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성장한다. 일을 해내는 것은 창업자이지만, 조언자이기도 한 투자자는 화두 제시, 고민 상담, 인맥 주선 등을 통해 창업자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람은 기계와 달리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좋은 영향력은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온다. 이런 영향력의 '질'은 결국 주관과 의지에서 나온다.

모든 투자에 있어 필자의 머릿속에 "이 팀에 투자해야 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투자자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시점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은 필자만의 고유한 것이다. 바로 주관이며 의지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모든 의사결정이 개인의 '견해(opinion)'에서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다. 창업자들은 주관적이다. 객관적인 도전이란 없다. 스타트업은 항상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도전에 대한 객관적인 기대값은 거의 제로다.

하지만 도전해야 혁신과 성공이 일어난다. 따라서 창업자와 투자자의 만남은 주관과 주관의 의기 투합이다. 모든 산업군에 걸쳐 공평하고 객관적인 일 처리가 중요한 영역들이 많다. 하지만 도전을 폭넓게 수용하고, 혁신을 활발하게 일으키기 위해서는 주관의 작동이 매우 중요하다. 당신의 조직에선 주관이 잘 작동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