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관리 가능한가…저소득층 ‘탈출구’ 필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3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부실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부채 총량이 관리 가능한 수준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 가계 빚 못지 않게 금융·실물 자산도 늘어=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4분기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규모는 1257조3000억원으로 3개월 전보다 33조6000억원(2.7%), 1년 전보다 125조7000억원(11.1%)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분기 가계부채 증가 규모는 역대 가장 많이 증가한 지난해 4분기(38조2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이같은 증가속도를 유지할 경우 연내 총액이 13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가계부채 관리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분명하다.

다만 가계부채에 못지 않게 같은 기간 금융, 실물자산 규모도 대폭 증가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가계 및 비영리단체가 보유한 예금,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 총액은 3230조9000억원으로 전기대비 54조8000억원 증가했다.

또한 가계부채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표적 실물자산인 주택 시가총액은 지난해말 기준 3519조5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6배 수준이다.

담보가 확실한 주택담보대출은 상환리스크가 비교적 낮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부채 증가속도가 예년보다 빠른 것은 분명하나 그 이상 금융·실물자산 규모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담보대출의 경우 당장 부실화될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 가계부채 뇌관 저소득·저신용자…제2금융권 갈아타기 증가= 이를 감안하면 가계부채 ‘뇌관’은 별도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있는 저소득·저신용자나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과다 채무자에서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이런 위기에 몰린 가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말 기준 순금융자산이 마이너스(-)인 동시에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DSR)이 40%를 초과하는 ‘한계가구’는 134만가구로 1년새 4만가구 증가했다. 또 원리금상환비율과 부채/자산 평가액 비율(DTA)이 임계치 수준(각각 40%, 100%)을 초과한 ‘부실위험가구’는 111만가구로 1년 만에 3만가구 늘었다.

특히 한계가구, 부실위험가구로 중복 판별된 ‘고위험 가구’는 54만가구로 추정된다. 이런 고위험 가구 중에서는 소득1·2분위 저소득층 비율이 40%로 가장 높았다. 연령대별로는 40대가 38.5%, 종사상지위별로는 자영업자가 34.2%로 각각 비중이 가장 높았다.

한은 분석결과 향후 시장금리가 오를 경우 이들의 부채상환 능력은 더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한은이 최근 제2금융권 대출 증가세에 우려를 나타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부채관리를 위해 시중은행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자 신용등급이 낮고 담보가 없는 저소득·저신용자들이 어쩔 수 없이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 문을 두드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올해 2분기 예금은행 기타대출 잔액은 전기대비 4조4000억원 증가한 166조6000억원,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 기타대출은 5조5000억원 증가한 159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여신심사가 강화된 올해 2월 초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대출부스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 전문가들 "규제강화보다 취약계층 지원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향후 가계부채 대책이 저소득층, 자영업자 등 금융취약 계층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변동금리 비중이 많고 이자율이 높은 비은행권 대출이 크게 증가한 점은 가계부채가 질적으로 악화됐다는 반증”이라며 “단순히 돈을 빌릴 수 있는 통로를 막기보다는 일자리 대책을 병행해서 금융약자인 저소득층들의 상환능력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제2금융권은 다중채무자가 많아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경우라도 사업, 생계비 등 다른 용도로 쓸 가능성이 높다”며 “가계부채 총량규제보다는 상환능력 검증을 강화하고 이미 대출이 집행된 취약계층들은 금리가 낮은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