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장기 저성장 국면…거버넌스 회복 필요”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경제가 위기에 준하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처럼 단기간에 엄청난 경제적 충격이 올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경기가 서서히 침체되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서울대 교수)은 “국내 성장률이 2%대 중후반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건설투자,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에 의존해 질이 나빠진 게 사실”이라며 “1997년, 2008년처럼 경제위기가 갑자기 찾아올 가능성은 낮지만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국면을 탈출하지 못해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가계부채, 기업구조조정 등 국내 리스크 요인에 최근 정치적 불안정성이 더해져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이라며 “내년 국제유가가 급등하거나, 미국이 금리인상 속도를 예상보다 빠르게 가져갈 경우 경기침체가 더 깊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통화정책 효과가 떨어진 상황에서 당장 믿을 것은 재정인데 이것도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며 “그동안 경기침체가 길어도 2년이었는데 최근 장기침체로 5~6년 저성장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5년 이상의 중장기적 시각으로 재정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미국, 중국 등 주요국 경기상황을 보면 적어도 내년까지는 대외적으로 큰 충격이 올 가능성은 낮다”면서 “문제는 국내 성장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인데, 최근 2년간 건설경기로 지탱했는데 내년 하반기부터 이외 특별한 부양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수출과 내수소비가 크게 늘어나기 어렵고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증대로 기업들이 투자를 대폭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며 “갤럭시노트7 생산중단, 현대차 생산량 감소 등 돌발악재를 감안하면 성장률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과거 IMF 외환위기처럼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할 만큼 긴박한 위기라고 보긴 어렵지만, 실물경기 부문에서 장기적으로 저성장이 심화되는 문제는 발생되고 있다”며 “가라앉는 성장세를 반등시키기 위한 구조개혁 성과가 매우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내수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등으로 대량실업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최근 경제구조 변화로 재정·통화정책 효과가 점차 떨어지고 있어 경기부양 여력이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최순실 게이트’로 정치적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국정 추동력이 약해진 것을 우려했다. 정부가 구상한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부문 구조개혁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전 금통위원)은 “경제 구조개혁은 컨트롤타워가 튼튼해도 어려운 작업인데 이번 사태로 거버넌스가 크게 흔들리면서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경제정책 운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단기적인 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 부양책을 남발할 경우 장기적으로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대체적이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향후 정부 추가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 거품이 빠지고 건설관련 투자가 줄어 성장률 지표가 다소 악화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경제 체질이 개선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기말을 앞두고 정국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현직 국무위원을 비롯한 고위관료들은 나라의 최후 보루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