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국풍 연상"이라더니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 어떻게 통과됐나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중구 문화창조벤처단지에서 열린 개소식에서 기념식 버튼을 누르고 있다. 문화창조벤처단지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해 온 '문화융성'의 핵심 사업인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일환이다. / 사진제공=청와대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조인 ‘문화융성’ 관련 사업에 직접 개입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예산까지 좌우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문체부가 국가재정법 위반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문화융성 사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추진했던 과거 국회 예산안 논의 과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문체부는 당시 예산을 배정받기도 전에 사업을 미리 진행하는가 하면 “절차적 정당성 부분에서 저희들이 놓친 부분이 있다”고 잘못을 시인하기도 했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은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주도한 사업으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7176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다.

앞서 TV조선은 최 씨가 직접 만들고 검토한 문건 가운데 '문화창조센터 건립'사업이 포함돼있었으며 이 사업이 현재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으로 확대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고서는 최 씨가 직접 수정하고 차 전 본부장의 이름으로 문체부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측근으로 알려진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은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주도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 2015년 11월 9~19일 교문위 "실체도 없고, 중복되고, 예산 전용하고"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예산은 지난해 11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진행된 예산 심사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예산이었다. 당시 해당 예산에 의견을 낸 9명의 의원 가운데 7명의 의원이 △ 융복합 사업의 실체가 없는 점 △ 소관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사업과 중복 우려가 있는 점 △ 국가재정법과 관광진흥개발기금법을 위반한 점 △ 리모델링 시 협약서, 계약서도 없이 '날림'으로 예산을 집행한 점 △추진 상황이 부실하고 예산 집행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감액 의견을 냈다.

당시 속기록에 따르면 문체부는 실제로 해당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광상품 개발 및 관광진흥사업 등에 쓰여야 할 관광진흥기금 80억원을 전용했으며, '건축'에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된 기금을 리모델링을 위해 집행했다. 모두 국가재정법과 관광진흥개발기금법 위반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또 예산을 심사한 뒤 배정받기도 전에 이미 문화창조벤처단지에 입주할 벤처기업을 뽑은 상태였다. 배재정 전 의원은 이를 두고 "문화부가 이미 다 결정을 사실상 하고 지금 내년 예산을 신청하신 것으로 이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문체부가 "문화창조융합벨트사업을 계속 하기 위한 중기재정계획"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예산안에는 사업규모를 2015년~2018년까지 4년만 규정한 것을 두고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받지 않기 위해 예산을 '꼼수편성'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태년 당시 교문위 예산소위원장은 "사업이 5년 넘어가면 예타 받아야 되는데 지금 예타 피하려고 4년으로 해 놓은 것 아니냐"며 "예타 심사대상인데 정부가 지금 꼼수 편성해놓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관광기금을 전용한 것을 두고 문체부의 주장이 엇갈리기도 했다. 당초 문체부 측은 "(문화창조벤처단지 사업은) 관광하고도 관련이 있어 관광기금을 전용했다"고 주장해왔으나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은 "문화창조융합벨트는 관광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 김태년 소위원장이 이를 지적하자 김 차관은 "제가 그쪽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얘기한 것 같다"고 황급히 말을 바꿨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관련 예산은 좀처럼 문체부와 교문위원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수차례 회의를 거쳤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갑작스럽게 예산이 급증한 점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했다.

김태년 소위원장은 "(이 사업이) 느닷없이 2015년도에 갑자기 최우선 국책사업이 되어 버렸다"며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또 매우 타당성 있게 지적이 됐는데 (문체부가) 이걸 하나도 수용을 안한다고 하니까 허탈해서 예산 심사를 하기가 좀 어렵다"고 말했다.

정진후 전 정의당 의원도 "너무 뭔가에 쫓기듯이 '문화창조융합' 이런 용어 하에서 기존에 있었던 각 부분들을 통합시켰다"며 "문체부의 거의 핵심사업인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이 염려들을 하고, 중복 관련한 내용들에 대해서 지적도 하고, 그런 우려도 했는데 한 번도 감액 의견에 대해서 존중을 안 해 주시면 어쩌자는거냐"고 따져묻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아울러 "이 사업에 대한 개요를 처음 봤을 때 80년에 있었던 국풍을 금방 연상했다"며 "문화라고 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즉각적으로 통합시켜서 일자리를 만들고 어떤 효과를 유발시키고, 경제의 논리로 이렇게 보는 것 자체가 저는 문화에 대한 올바른 접근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박민권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지난 1월 서울 중구 청계천로 문화창조융합벨트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 문체부 "성급하게 추진했으나, 뼈아프게 수용하겠다"

해당 심사과정에서 유일하게 문체부의 손을 든 위원은 친박계로 분류되는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이다. 박 의원은 4차례에 걸친 회의에서 "이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은 정부 원안을 되도록 좀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사업은 어쨌든 대통령이 창조경제라는 하나의 국정 목표를 세우고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사항이다", "국회도 전향적으로 협조하는 자세가 좀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교문위원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은 몸을 낮추며 "저희가 너무 성급하게 추진한 부분이 있다. (위원님께서) 지적하신 부분들을 저희들이 뼈아프게 다 수용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박 전 차관은 또 "저희 생각만 하고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다 보니까 계약을 순차적으로 하지 못했고 이런 부분들이 있다"면서도 "법률적으로는 문제는 없고 다만 추진하는 데 있어서 너무 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절차의 정당성 부분에서 저희들이 놓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밖에 TV조선에서 보도한 최씨의 문건에 기록된 '실버문화육성'사업이나 차 전 본부장이 활동한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예산도 심사 때 논란을 빚은 건 마찬가지다.

2014년 '실버문화 육성사업'에는 △ 실버계층 방송프로그램제작 9억원 △ 다큐멘터리제작 6억원 △밴드·풍물사업 및 축제 5웍원 등 총 20억원이 편성됐다. 당시 교문위 예산소위 속기록에 따르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중문화예술 진흥사업' 안에 편성된 '실버문화 육성사업'이 대중문화·예술진흥이라는 사업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화융성위원회 예산도 논란이 됐다. 해외여비나 심포지엄 등 '자문위원회'란 성격에 벗어나는 사업에도 예산이 과다, 중복 편성됐다는 지적이 잇따른 것. 정진후 전 정의당 의원은 당시 "'융복합' 하면 모든 것이 다 통용되듯이 되는데 자문기구는 문화융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반사항을 검토해서 대통령께 정책자문을 하고 건의하는 것"이라며 "(자문기구인데)사실상 내용을 보면 집행적인 사업성격이 굉장히 강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