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구글 제재하는데'…발목잡힌 韓 플랫폼 중립 의무화

유럽연합(EU)이 구글에 독점적 지위 남용으로 3조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한 가운데, 국내에서는 구글 등 플랫폼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추진해왔던 불공정 행위 관련 규제 도입이 차질을 빚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망 사업자에게만 부과하는 중립성 의무를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확대하는 법령 제정을 추진 중이지만 새 정부 체제의 방통위 구성이 늦어지며 제도 시행 시기가 지연돼 있다.

◇플랫폼 사업자 불공정행위 금지 기준 ‘고시’ 시행 연기=방통위는 지난 3월 망·플랫폼 사업자의 서비스 중립 의무를 명시한 고시 제정안(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을 마련해 행정예고 했다. 이 고시는 기간통신사업자의 망 중립성 의무와 같이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중립성 의무를 부여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다. 즉 검색포털, 애플리케이션마켓, 오픈마켓 등 인터넷 사업자들이 플랫폼 지배력을 이용해 거래 사업자에게 부당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담겨있다.


당초 방통위는 해당 고시안을 행정예고 기간 사업자 및 관계부처,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하고 해당 고시안을 1일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방통위 구성이 늦어지면서 최종안을 확정, 의결하지 못해 시행 일정이 미뤄지게 됐다. 현재 방통위는 고삼석 상임위원, 김석진 상임위원 2인 체제로 전체회의 개최 조건인 상임위원 과반수(3인)도 채우지 못한 상태다. 3일 이효성 전 성균관대 교수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됐으나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최종 고시안 의결은 방통위 구성이 마무리되는 이달 말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다만 방통위 관계자는 “의견 수렴과 법제처 규제심사를 거쳐 내부적으로 최종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고시가 시행되면 구글, 애플 등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 앱을 선탑재하거나 앱장터에서 경쟁 상품 검색 배제 등의 행위가 금지된다. 또 포털사업자가 다른 서비스 검색 결과를 제한하거나 자사 광고를 이용하지 않는 기업들의 사이트를 검색순위에서 일부러 배제하는 등의 행위도 제한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방통위로부터 시정명령·과징금 등 행정 제재를 받게 된다.

◇플랫폼 중립성 규제 왜 나왔나..실효성은=방통위가 플랫폼 중립성 규제를 도입한 것은 포털, 앱마켓 등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서비스가 늘어나며 플랫폼 사업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공정경쟁, 이용자 선택권을 저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현행 공정거래법으로 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 등을 규제할 수 있지만 ICT(정보통신)업계 특성을 반영한 전문적인 규제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말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플랫폼 중립성 규제를 도입하고 구체적인 금지 행위 기준을 적시하기 위해 고시 제정을 추진해왔다. 고시안에는 행위 주체와 관련해 행위 목적이나 의도, 상대방의 경쟁 관계 여부를 고려하도록 했고 시장구조, 대체 가능 여부, 시장 왜곡 가능성 등도 고려토록 하는 등 금지행위 판단 기준을 나열했다. 또 실질적 이용자 이익 침해가 없거나 이용자 편익이나 후생 증대가 큰 경우, 안정성, 보안성 확보를 위한 경우 등의 예외조항도 담았다.

그러나 시행령에 담긴 규제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란 비판이 있는데다 고시에 담긴 내용조차도 원론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고시시행에 맞춰 구체적인 사례를 담은 해설서를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이마저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 등 관계부처 협의가 늦어지면서 해설서 편찬 작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해서다. 방통위는 위원회가 구성되고 나서 해설서 발간 여부를 재검토해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