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치 채용계획 내라"는 정부 요구에 은행권 '진땀'

금융위원회가 주요 은행을 대상으로 향후 5년간 매년 구체적인 채용 규모를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은행권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은행으로선 비대면거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향후 5년간 채용계획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상당히 난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이달 초 주요 은행들로부터 향후 5년간 예상 채용 규모를 제출받았다. 각 은행은 올해 채용 규모는 물론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인 향후 5년간 채용 계획을 매년 ‘몇 명’ 단위로 자세하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일자리 창출인 만큼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 5년간 채용 계획을 제출받은 것으로 안다”며 “은행 자체적으로 중장기적인 인력 채용 계획은 세워져 있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5년간 계획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매년 퇴직 인원과 점포 통·폐합, 신규사업 진출 등에 따른 인력 수요 등을 감안해 주요 은행마다 향후 5년간 채용 규모가 어느 정도 수립돼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 방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은행들로서는 단지 올 한 해도 아니고 5년 뒤 채용 계획까지 미리 보고하라는 요구가 상당히 곤란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금융산업도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라는 압박이 실적이 좋다는 이유로 은행에 집중됐던 만큼 ‘앞으로 5년간 매년 채용을 늘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부담 때문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채용을 늘리라’는 식의 주문은 없었지만 향후 5년과 현 정부의 임기가 겹치는데 가령 ‘3년 후에는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고 보고하기는 어려웠다”며 “채용 계획 제출 직전까지 은행끼리 몇 명 늘린다고 보고했는지 ‘눈치보기’가 치열했다”고 전했다. 향후 영업환경 변화로 채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돼도 이미 보고한 ‘5개년 채용 계획’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은행권은 이미 정부 정책에 호응해 올 하반기 채용을 전년 대비 대폭 늘렸다. 올해 KB국민·우리·신한·KEB하나·IBK기업은행 등 5개 은행의 신입직원(일반직군 기준) 채용 규모는 약 1650명으로 지난해 1040명 대비 60% 가까이 늘었다. 특히 증권·보험·카드업계 등 비은행권은 통상 채용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연봉 계약 방식의 경력직 채용이 일반화돼 있어 정부의 채용 확대 압박은 은행권에 집중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인사 실무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 고용을 확대한다는 정책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은행에 은근한 채용 확대 압박이 가해진다는 점은 문제”라며 “빠른 환경 변화 속에서 유연하고 미래 지향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은행권의 가장 큰 과제가 된 상황에서 5년치 채용 계획을 당국에 제출해 지켜야 한다면 기형적인 인력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