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년만에 빛을 본 조선왕조실록 지킴이…문화재지킴이 날

21일 오후 경복궁 수정전 앞에서 열린 ‘문화재지킴이 날’(6월 22일) 선포식에서 '조선왕조실록' 이안(移安) 재현 행사 관련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국민이 자발적으로 문화재를 지키는 문화재지킴이 운동은 2005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번 선포식은 과거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고자 한 선비들이 1594년 6월 22일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낸 역사성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사진제공=문화재청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의 지킴이들에게 350여년만에 국가 차원의 감사의 뜻이 전해졌다. 임진왜란에 소실될뻔 했던 실록을 산속 깊숙이 숨겨 오늘날까지 이어지도록 한 유생들의 공적을 기리는 것으로 이들의 활동이 시작된 날은 새로 제정된 문화재지킴이의 날(6월22일)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한옥마을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전라북도 전주의 경기전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전시돼 있다. 관광객들은 무심히 지나치지만 실록의 보존에는 사연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실록이 보관돼 있던 다른 곳들은 모두 왜군에 의해 불탔지만 전주사고본만은 무사했다.

왜란이 발발한지 2년여만인 1594년 당시 충주, 성주, 춘추관에 있던 실록이 불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전북 정읍의 선비인 안의와 손홍록 등은 실록을 전주사고에서 내장산 용굴암 등으로 옮겨 1년이 넘도록 지켜낸 것. 55세의 손홍록과 64세의 안의, 두 선비는 사재를 털었고 식솔들의 도움을 받아 동굴 생활을 대여섯달씩 묵묵히 견뎌내면서 정세가 안정된 뒤 실록이 다시 옮겨지는 것도 도맡았다.

조정에서는 두 선비의 공덕을 기려 1676년(숙종 2년)에 정읍의 사당(남천사)에 배향했지만 그뒤 고종 때 서원철폐 등의 정책으로 사당의 쇠락과 함께 잊혀지고 말았다.

이같은 역사적인 흔적은 전북 지역 향토사학자(이용찬 브레이크뉴스 기자)에 의해 발굴돼 알려졌고 문화재청과 지역사회의 역사 바로 알기 노력으로 이어졌다.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고 실록과 역사의 고장이기도 한 전주한옥마을이 인기를 끌면서 실록의 가치는 더욱 높아져갔다.

1990년대부터 자발적으로 시작해 2005년부터는 문화재청과 함께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운동’을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가 주도적으로 펼쳤고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가꾸고 지켜가는 이같은 참여형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문화재 지킴이 날’을 제정, 선포했다.

문화재청은 안의와 손홍록 선비의 문중(탐진 안씨, 밀양 손씨)을 대표해서 안병기 건국대 교수와 손주호씨와 이를 발굴해낸 이용찬 사학자에게 문화재 유공자 시상을 했고 21일 실록 보존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위대한 동행’ 연극과 무용공연 등을 경복구 수정전 일대에서 치렀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유성엽 국회의원(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정읍이 없었고 안의, 손홍록 선생같은 분들이 안 계셨다면 실록도 없을 것이고 우리는 ‘용의 눈물’같은 사극도 볼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들의 업적을 기렸다.

21일 경복궁 수정전 앞에서 김종진 문화재청장이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 날’로 제정하는 선포식을 열고 이를 기념하는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문화재청

이들을 포상한 김종진 문화재청장은 “국가 위기의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실록을 보호한 분들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며 “전국에서 문화재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국민들이 건강한 문화공동체를 일구는데 앞으로도 역할을 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