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늘리고 공연시간 당기고…'주 52시간'의 문화행복 첫 시험대

1일 '주52시간 근로' 시대를 맞아 문화예술계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늘어나는 관객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다양화하거나 공연시간을 앞당기는 등이 그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공유하기 위한 업계들의 할인 혜택 행사도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연극 '손님들' 공연모습. /사진제공=국립극단

1일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으로 주 52시간 근무 시대가 열리면서 문화계에도 대규모 변화가 예상된다. 근무 시간 단축으로 여가가 늘어나는 만큼 퇴근 이후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평일 오후 8시에 이르러야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나 연극 관람이 최대 1시간 이상 빨라지고 영화관에선 퇴근 시간 직후 많이 볼 수 있도록 대규모 할인 혜택이 제공될 예정이다.


이날 문화계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발맞춰 문화 콘텐츠 업계들이 다양한 프로모션과 콘텐츠 공급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실시한 조사에서 여가에 하고 싶은 것에 취미 활동과 문화·예술 관람이 2·3위로 꼽힌 만큼 앞으로 늘어날 문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규모 공연장들은 주 52시간 근무가 바꿀 사회 풍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공연 수요가 늘어날 경우 콘텐츠를 늘리거나 다양화하는 방식을 물론, 시간대를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가량 앞당기는 문제를 논의 중이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전년도에 체결된 계약 공연들이라 당장 7월부터 바뀌는 것은 없다”면서 “여가 증대, 문화 향유 계층 확대 등 사회 변화에 관심을 두고 내년도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극단은 10년 전부터 오후 8시 공연을 30분 앞당긴 7시 30분으로 정하면서 주52시간 근무 변화에 미리 대응했다. 이성열 감독이 지난해 말 부임할 땐 산하 3개 극장을 테마별로 콘텐츠화해 관객 다양성 욕구에 부응했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시행으로 어떤 변화를 줘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며 “문화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 맞춰 공연 콘텐츠 양과 질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잡힌 ‘계획’을 수정하기 어려운 문화 단체들은 할인을 통해 ‘저녁이 있는 삶’에 동참하고 있다. 2일부터 8월 30일까지 ‘칼퇴 적응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CGV는 약 20% 할인 가격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세종문화회관은 ‘한夜(야)광’ 패키지를 통해 할인 행사를 펼친다.

CJ CGV의 황재현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주 5일제처럼 주 52시간 근무 도입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람객이 증가할 것 같다”며 “현실적으로 상영 시간을 조정하기 어렵지만, 할인 혜택을 통해 ‘퇴근 후 여가’를 더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1일부터 시행되는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제도를 이용하면 늘어난 문화 여가 비용을 어느 정도 보전받을 수 있다. 온·오프라인 도서·공연비 소득공제 전용 가맹점에서 구하는 도서와 공연 티켓에 대해 최대 100만 원까지 30%의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제도다.

1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주52시간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문화 관련 업계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저녁 여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관에서는 2일부터 할인 행사를 통해 관람객을 유혹하고 있다. 관람객이 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 시내 한 극장을 찾고 있다. /사진=뉴스1

하지만 정부와 문화단체들의 노력에도 문화생활 확대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여가비 지출이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로 시간 단축이 문화생활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2000년 주 35시간 근로제를 시행한 프랑스는 시작 단계에서 ‘행복한 프랑스’와 ‘최악의 법안’ 두 주장이 맞서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주 35시간’은 재정 투입과 노사 공조 속에 연착륙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일자리 35만 개가 새로 생겨나며 실업률에서도 벗어났다.

프랑스 조사통계국이 최근 발표한 ‘주 35시간제가 프랑스인 생활에 미친 영향 평가’를 보면 ‘휴식시간’에서 좋아졌다(52.9%)가 나빠졌다(19.3%)보다 3배 가까이 높았고 ‘정기 휴가 제공’ 부문에서도 좋아졌다가 70.7%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다.

또 35시간 근무로 2000년 이후 전체 인구의 46%가 법 시행 이전보다 더 많은 책과 음반을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프랑스의 대표 서적 및 음반 유통기업인 프낙은 2000년 이후 매출액이 25% 증가했다. 영화관을 찾는 관람객도 전보다 24% 늘었다. 개인 여가생활뿐 아니라 문화생활에도 활동이 높았다는 얘기다.

한국도 법으로 강제한 첫 사례인 프랑스 근로단축제를 롤모델로 수용하며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 공연 기획 관계자는 “정부가 재정 투입에 대해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거나 문화 활동을 위한 지원책을 등한시할 경우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며 “법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 ‘저녁이 있는 삶’이 무늬가 아닌 현실적 행복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