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보다 화려했던 조선 궁궐의 밤, 그 역사 내년부터 이어간다

야간개장한 창경궁 모습. /사진=뉴스1

"창경궁은 "내년부터는 1년 내내 밤 9시까지 개방합니다."

지난 16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궁 야간 프로그램에 대해 질의하자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같이 답했다. 창경궁은 경복궁과 더불어 야간 특별관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인기가 높아 티켓 오픈 후 금방 매진되기 일쑤다.


궁은 대낮 관람이라는 인식을 깨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는데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저녁 시간에 고궁을 산책하려는 관람객이 증가한 것도 한몫했다. 수백 년 전 궁궐의 밤은 어떠했을까. 어둠이 내린 조선시대 궁의 진짜 모습을 파헤쳐본다.

◇낮만큼 분주했던 조선시대 궁궐의 밤, 새벽 3시까지 과거시험 치르기도

한국문화재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궁궐에선 밤에도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밤은 보통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로 인식했는데 어둠이 내린 밤에도 임금은 불을 밝히고 학문 정진에 힘쓰는 '야대'를 이어갔다. 야대에는 홍문관 관원과 사관, 승지가 함께 참석했다. 야대는 조선 초기부터 시작됐으며 공식 업무시간 이후에 치러져 분위기가 다소 느슨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영조의 경우 밤잠이 적어 야대를 즐겼는데 강독이 끝난 후 술을 함께 내려 마시고 시를 지어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야대는 학문적으로 성장하는 수단이자 군신 간의 친화를 나누는 계기가 됐다.

1848년(헌종 14) 순원왕후의 육순과 신정왕후의 망오(41세)에 거행된 진찬례(잔치)를 여덟 폭 병풍에 그림 '무신년 진찬도'. 궁궐 안에서의 성대한 의례와 연회를 확인할 수 있다. /자료 제공=국립중앙박물관

궁궐에선 흥겨운 잔치로 밤을 즐기기도 했다. 궁궐의 잔치는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오전 7시부터 9시에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19세기 순조 때부터 밤에도 잔치를 열었다. 낮에 이어 저녁 7시부터 다시 잔치를 시작한 것. 이렇게 밤에 잔치를 여는 것은 '야진연' '야진찬'이라고 한다. 야진찬이 시행된 것은 왕실의 잔치 규모가 확대된 것으로 왕실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조처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관료가 되고자 했던 사람이 많다 보니 궁궐로 시험장소를 옮겨 밤까지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일반 과거시험과 달리 한 번의 시험으로 합격할 수 있는 '알성시'에 많은 응시자가 몰리자 성균관 명륜관에서 인원을 다 수용하지 못해 궁궐로 장소를 바꾼 것. 답안지를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에 내도록 했지만 답안지 작성이 어려운 경우 재량으로 불을 밝히고 시험시간을 연장했다. 이튿날 새벽 3시가 되도록 답안을 작성하는 응시생도 있었다.

야간개장한 경복궁의 경회루 모습. /사진=황희정 기자

◇'야간 통행금지 해제!' 특별한 날, 궁궐 밖에서 밤을 즐기는 법

조선시대에는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다니는 것을 통제했다. 정월대보름날(상원일), 초파일, 섣달그믐과 같은 세시 절기와 명절에는 임금이 야간에도 다닐 수 있게 허락했는데 특정한 날에만 허용되다 보니 이날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야행문화가 발달했다.

정월대보름 밤 서울 광통교와 수표교에선 다리밟기가 성행했는데 이날 다리를 건너면 1년간 다릿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중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선 밤새도록 촛불을 밝혀 연주회를 듣는 모임을 즐겼으며 양반 자제들은 세속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국숫집과 탕을 파는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외에 공식적으로 밤을 새울 수 있는 3대 철야일도 존재했다. 밤을 지켜 복을 얻는 경신일, 새해와 묵은해가 교차하는 교년일, 송구영신의 밤 제야일에는 궁중과 민간에서 불을 밝히고 밤을 지샜다. 한해가 끝나는 날부터 새해를 맞이할 때까지 폭죽을 터뜨리는 제야일의 풍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