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된 경제관료들…영화 '국가부도의 날' 반응

최국희 감독(가운데), 배우 허준호, 김혜수, 유아인, 조우진이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CGV에서 열린 영화 '국가부도의 날'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br><br>'국가부도의 날'은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오는 28일 개봉.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영화에서 무책임하고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묘사된 경제부처 관료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등장인물의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악 구도를 부각한 것이 영화적 설정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인 만큼 관객들이 현실을 혼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파국을 예견하고 이에 적극 대비하려 했던 것으로 그려진 한국은행은 문화행사로 단체관람을 계획하는 등 고무된 분위기다. 경제성장을 중요한 가치로 두는 정부와 물가안정을 첫째 목표로 삼는 한국은행 간의 갈등은 일상적이지만, 개봉된 영화를 두고도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극중 한은 통화정책팀장(김혜수)은 국가 위기를 예견하고 대책을 세우며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는 인물로 나온다. 한은 팀장과 반대 진영에서 대립하면서 이익을 차리려는 인물로 경제관료인 재정국 차관이 등장한다. 재정국은 가상의 부처이지만 당시 국가 경제정책을 총괄한 재정경제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영화는 외환위기를 소재로 다뤘을 뿐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됐다. 영화 속 한은 통화정책팀장이 가장 먼저 위기를 예견하고 정부를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고 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강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한은 간부가 '최근의 경제상황과 정책대응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두고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은이 외환위기를 경고했다는 '근거'로 드는 보고서다.


하지만 보고서는 그동안 금융기관과 연구기관이 이미 언급했던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영화에서처럼 한은이 가장 먼저 외환위기를 경고했다는 영화적 설정을 뒷받침할 수는 없다. 한은 관계자도 "외환위기 당시 경제연구소 등 여러 경제연구 기관에서 위기관련 보고서를 내놓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경제 관료들이 안일한 대처로 일관했다는 데 대해서도 기재부 관리들은 할 말이 많아 보인다. 1997년 1월부터 11월20일(IMF 자금요청 지원)까지 환율, 외환보유고, 외환시장 동향 등 외화자금과에서 만든 상황과 대책 보고서가 83개에 달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수고한 선배들에게 무능했다는 질책은 몰라도 직무유기라고 비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일반 기업에 근무하는 친구가 영화를 봤다며 한은은 '슈퍼스타', 정부관료는 '적폐'로 그려졌다고 사석에서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산안 심사와 부총리 인사청문회 준비 등으로 시간이 없어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외환위기에 대한 책임도 정부와 한은이 함께 져야 하고,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도 정부와 한은이 공조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나치게 대립 구도로 몰고가는 것은 영화 흥행을 위한 것이라곤 하지만 사실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항변했다.

한은은 영화를 통해 한은이 재조명되는 것에 대해 반기는 모습이다. 한은은 오는 4일 공보관실 직원들이 단체로 영화 관람을 할 예정이다. 다른 부서도 삼삼오오 영화관람을 계획하고 있다. 다만 한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 "올들어 한국의 경제지표가 좋지 않고 가계부채가 1500조원을 넘어서는 등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이번 영화를 계기로 한번쯤 경제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지 기재부와 한은에 대해 각을 세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