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인격이라는 낙인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인기자

학습이란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등산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일하지 않은 인격이야말로 우리의 등산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여러 갈래의 길을 동시에 나아가는 것은 식견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정보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각종 장해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강점을 갖습니다.

반면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의 경우에는 이것이 불가능하죠. 그들은 최초로 선택한 하나의 길을 계속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산의 전체적인 모양도, 풍경도 보지 못한 채 가느다란 선을 긋듯 이어지는 등산은 결국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고, 정상에 도착하더라도 원숙한 학습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선택한 길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돌멩이에서 싯누런 금을 뽑아내려던 연금술사들의 욕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한 지식은 화학이라는 학문을 탄생시켰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설령 학습이 좌절되더라도 축적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은 우리 미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주기 마련입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역량개발과정에서 다른 분야와의 관련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경우 이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4) 하나의 인격과 범죄성


범죄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범죄자의 무엇이, 혹은 그들 주변의 무엇이 법의 울타리 바깥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걸음을 옮기게 끔 만들었을까요? 과연 범죄자와 비범죄자를 가르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할까요?

범죄학이 생기기 전부터 수많은 학자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진 것은 전무합니다. 범죄성에 대한 탐구의 역사는 단일성 정체감 장애에 대한 탐구만큼이나 길고 복잡한 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슷한 길을 걸어가던 둘의 접점이 탄생하였고 현재까지 유지되는 것은, 두 요소가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 범죄율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더불어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통해 상당수의 원시반응(Primitive Reaction·강한 감정체험이 억제되지 않고 단순한 형태로 직접 발산되는 것) 범죄자들이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이거나 그와 일견 유사한 특질을 가졌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세상을 받아들이고 상호작용하는 유일한 인격체로서 스스로를 자각합니다. 이는 자신의 욕구와 외부통제 사이의 빈번한 충돌을 불러오고, 때로는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게끔 그들을 유도합니다.

앞서 언급한 정신의 경화는 성장 과정에서 이와 같은 경향을 부풀립니다. 즉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필연적으로 주변 사물과 환경에 대한 지배 욕구가 증대되는 방향으로의 성장을 이룹니다.

그러나 범죄성의 탐구에 대한 많은 가설들이 반드시 지적하듯, 다른 모든 조건에 우선하여 절대적으로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이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루는 것은 크고 작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유기적인 조각들이며, 따라서 그중 특정한 요인이 미치는 영향 또한 언제나 상대적인 측면으로 이해되는 것이 옳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