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행동주의…하이패스 주총에 겹겹이 톨게이트

올해 3월 열릴 상장사 정기주주총회를 놓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7월 도입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 원칙)가 이번 주총부터 본격 시행되고,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은 주주권익 향상에 소홀했던 기업들에 의결권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행동주의 펀드’들까지 가세해 세를 불리고 있다.

사실상 ‘주주 행동주의’의 원년인 올해 주총장 곳곳이 이들과 방어 전선을 구축한 기업들의 격전장이 될 전망이다. 주총을 끝내도 회사에 별반 변화가 없었던 예전과 달리 앞으로는 주주들이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을 문책해 교체하고 전폭적인 사업전략 수정을 요구하는 모습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배당확대나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 정책은 기본이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첫 사례로 한진칼·대한항공 지목=국민연금은 16일 서울 더 플라자 호텔에서 올해 첫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한진칼 (57,700원 ▲300 +0.52%)과 대한항공 (20,800원 ▲200 +0.97%)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시사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기금위 위원장)은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공정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며 “두 회사에 대한 주주권 행사안건 논의는 (국민 노후자금) 수탁자 책임원칙을 이행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세부 주주권 행사 여부와 방안 등을 검토한 뒤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열리는 기금운용위에서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그간 ‘주총 거수기’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6년 국민연금이 참여한 정기·임시주총에는 총 3344건의 안건이 올라왔는데 찬성률이 89.5%였고, 10대 그룹사의 경우는 92.5%에 달했다. 그나마 있었던 반대안건은 배당같은 소소한 이슈였다. 정작 중요한 지배구조 변경이나 기업 분할·합병은 ‘하이패스’였다. 그러나 박 장관의 말처럼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 투자자들이 나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섀도우보팅 폐지, 전자투표 확대, 의결권 자문기관 행보 등 주목=삼성전자 (76,700원 ▲400 +0.52%)를 비롯해 SK하이닉스 (177,800원 ▲7,200 +4.22%), 현대차 (249,500원 ▼500 -0.20%), 포스코 (394,500원 ▲2,000 +0.51%), KB금융 (76,000원 ▲6,700 +9.67%), CJ제일제당 (337,000원 ▲4,500 +1.35%) 등 주요 상장사에 대한 국민연금 지분율은 10% 가량이다. 여기에 국내 기관투자자가 10~20%, 외국인이 40~50%인 구조다.

지분율이 합쳐지면 사실상 어떤 안건도 통과되지 못한다. 예전에는 이 지분이 흩어져 무사통과가 가능했으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는 얘기다. 여기에 섀도우보팅(의결권 대리행사)제도 폐지, 주총 전자투표확대, 의결권 자문기관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더해지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1~3월 정기주총을 연 상장사 1789곳 중 66곳에서 96개 안건이 부결됐다. 이는 2016년 7개와 2017년 9개의 10배가 넘는데 올해는 부결안건이 200개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동조하는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당장 한진그룹은 한진칼과 (주)한진의 2대 주주(지분율 각 10.71%, 8.03%) 로 부상한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의 공세를 받고 있다.


◇회사에 실망한 투자자, 행동주의로 전환=현대차 (249,500원 ▼500 -0.20%)그룹의 경우 지난해 지배구조 재편을 추진했는데, 이와 관련한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으로 주주총회가 무산되기도 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일가의 일탈행위 때문에 주주
행동주의가 촉발됐다”며 “소액주주 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를 좌우하는 자문기관들도 같은 시각을 갖고 있어 쉽지 않은 국면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기업들이 자초한 측면도 크다는 지적이다. 배당확대나 자사주 매입 같은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일감 몰아주기 같은 편법이나 독단경영에 몰두해 주주들을 실망 시켰다. 맥쿼리인프라, 아스트 등 회사 정책에 실망한 기존 투자자들이 행동주의로 전환한 배경이다.

재계는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그 영향력이 막대한 만큼 단순 투자가 아니라 경영 참여에 나설 경우 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동민 교보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전망”이라며 “일부 우려도 있으나 기업지배구조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기업과 경제 생태계를 회복하는 순기능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