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 대법관 시절 지인 상고심 '셀프배당' 의혹(종합)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지연 개입 의혹 등을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18.11.19/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 전 대법관(62·사법연수원 12기)이 대법관 재임 시절 지인으로부터 형사사건 관련 부탁을 받은 후, 실제 해당 사건의 상고심이 당시 박 전 대법관이 맡은 소부에 배당된 사실을 포착했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같은 정황을 박 전 대법관을 상대로 재청구한 구속영장에 기재하고 고의성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대법관을 지낸 2011년부터 2017년 사이 고교 후배이자 투자자문회사 T사 대표인 이모씨가 탈세 사건으로 기소돼 부탁하자, 재판 진행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법원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을 여러 차례 무단 열람하고 수시로 자문을 해준 것으로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법관은 이씨를 본인 집무실로 수차례 불러 면담하고, 지난 2014년부터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이후엔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작성한 이씨 사건 관련 신건 보고 및 검토 보고서 등을 출력해 보기도 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나타났다.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검찰이 상고하면서 지난 2012년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가자, 이씨가 박 전 대법관에게 자신의 사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진술을 검찰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실제로 이 사건은 대법원 3개 소부 중 박 전 대법관이 속한 1부에 배당됐고, 박 전 대법관의 후임 법원행정처장을 맡게 되는 고영한 전 대법관이 주심이 돼 이듬해 이씨는 무죄 판결을 확정받게 된다.

이씨는 탈세 관련 형사소송 외에도 국세청 140억원대 세금 부과 취소 행정소송 등 본인이 연루된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박 전 대법관에게 부탁해온 것으로 파악돼 검찰은 추가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씨의 투자자문회사는 앞서 2017년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되면서 퇴임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고문으로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임 전 차장이 박 전 대법관의 소개로 재취업하게 된 것이라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하면서 압수수색한 바 있다. 박 전 대법관이 재판 관련 편의를 봐준 대가로 자리를 준 것이 성립된다면 제3자 뇌물죄가 의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을 무단 열람해 사건 진행을 파악하고 이씨에게 자문해준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를 먼저 적용해 지난 18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고, 사건 배당 과정에서의 전산조작 등 부정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박 전 대법관은 양승태 사법부의 역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과 관련해 지난 2015년 2월 당시 곽병훈 신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임명되자, 대법원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함께 만나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추진하고 있으니 도와달라, 청와대 내부 사정과 관련해 행정처가 알아야 할 내용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취지로 직접 언급한 정황도 확인했다.

앞서 공개된 법원행정처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에는 당시 우 전 수석이 2심 재판 결과에 큰 불만을 표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기를 희망했고 이에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의 진의를 전달했다고 적시돼있다. 실제 원 전 원장 사건은 상고심에서 전합에 회부된 후 파기환송됐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처장일 당시 법원행정처가 원 전 원장의 상고심을 사법부의 숙원이었던 상고법원 추진과 연계하려 했던 정황도 파악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법관은 민정수석실 내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청와대와 교감해오면서 곽 전 비서관에게 원 전 원장의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당시 '우 수석이 불만이 많다던데 설명을 잘 해달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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