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운명 가를 국민연금 기금위 무슨 얘기 오갔나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전 2019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린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기금운용위에서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해 사회적 물의를 빚어 주주가치를 훼손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스튜어드십코드' 적용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2019.1.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민연금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지난 16일 올해 첫 회의를 열고 한진그룹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한진칼 등에 대한 주주권 행사와 범위 여부에 대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검토키로 했고, 내달 초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날 과연 위원들은 기금위에서 어떤 논의를 벌였을까. 복수의 위원들에 따르면 시민단체와 노동계 단체 대표 위원들 중심으로 주주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사용자 대표 등은 기업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로 맞불을 놨다고 입을 모았다.

◆시민단체 등 한진, 갑질, 비리 묵과 못해“=기금위는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위원 6명(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포함), 근로자(노동계) 대표 3명, 사용자(경제계) 대표 3명, 사회단체 및 전문가 등 지역 가입자 대표 6명, 관계전문가 2명 등 20명으로 구성됐다.

이 중 시민단체 대표인 지역가입자 대표 한 A위원은 ”지난해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대한항공에 대한 한진 오너 일가의 통행세 수취 등 비리가 잇따랐다“며 ”국민연금이 대한항공과 한진칼 등 그룹 핵심 계열사의 주요주주로 주주권을 발동해 오너 일가의 전행을 막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계 대표인 B 위원도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놓고 봐도 대한항공, 한진칼 등의 경우 주가가 크게 떨어지는 등 회사 가치 하락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시민단체와 노동계 위원들은 대부분은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위원들은 지난해 조 전 전무의 직원들에 대한 물컵 투척 사건이 알려진 직후인 4월 12월 하루동안 대한항공의 주가가 6% 이상 떨어지며 시가총액이 2200억원 규모나 줄어드는 등 기업가치 약화를 초래했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날 상장계열사 한진칼 주가도 6% 이상 하락하는 등 하루 만에 그룹 계열사 주가 하락에 따른 시가 총액 감소가 이어졌다는 입장이다.

다른 지역 가입자 대표 C 위원은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경영 참여를 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주주권 행사는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다수였다“며 ”시민단체와 노동계 측에서 이번 기회에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했다.


◆재계 비리 판결 안나와, 경영개입 노골화 등 우려=하지만 재계 대표 위원들은 아직 오너 일가의 비리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맞섰다.

사용자 대표 D 위원은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유죄로 결론짓고 주주권을 행사하면 앞으로 이와 같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게 된다“며 ”이번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첫 사례가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재계 위원들 중에선 이번 주주권 행사를 시작으로 기업경영 개입이 노골화돼 기업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사용자 대표 E 위원은 ”재계 등에서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주주권을 발동하는건데, 다른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 등 미치는 파장을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단계적으로 하자는 주장이 여럿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F 위원은 ”무조건 주주권을 발동하는 건 안된다는 게 아니라 기관투자자로서 이 기업이 주주권을 발동해야 할 대상인지를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파악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했다.

과연 경영진이 잘못해서 주주가치가 떨어져 국민연금이 피해를 입혔는지를 검증해 보고 실제로 경영진의 문제가 있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무엇을 어떻게 할 지 결정하자는 것이다.

정부 위원 6명은 약속이나 한 듯 이날 모두 발언을 최대한 자제 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정부 개입 논란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위원장으로 기금위 회의를 주재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정부 측 인사들은 거의 발언을 하지 않았다“며 ”어떤 발언을 해도 취지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했다.

이날 상정된 ‘대한항공,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안건’에는 전체 기금위원 20명 중 11명이 주주권 행사 관련 의견을 제출했다. 이 중 8명이 동의했고 3명은 반대했다. 정부 측 당연직 위원 5명은 의견을 내지 않았고, 지역가입자대표 6명 가운데 3명도 회신하지 않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은 반대한 반면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과 한국공인회계사회, 참여연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등은 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