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영장 기각 배경은…경찰, 수사권조정 최대 암초만나

성매매 및 성매매알선, 버닝썬 자금 횡령 등을 받는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29)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중랑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사진=이영민 기자

'버닝썬 게이트'를 수사해온 경찰이 주인공 승리(본명 이승현·29)에 꺼내든 구속영장 승부수가 수포로 돌아갔다. 2개월여 동안 수사를 통해 구속영장 신청에 신중을 기했지만 신중함은 오히려 독이 돼 돌아왔다.

서울중앙지법은 1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씨와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12시간여 만에 이같은 판단을 내놨다. 경찰이 200여쪽에 달하는 분량의 범죄혐의를 들어 구속 필요성을 주장한 점을 감안하면 다소 빠른 판단이다.


이날 이씨 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맡은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자금 횡령 부분은 유리홀딩스 및 버닝썬 법인의 법적 성격, 주주 구성, 자금 인출 경위, 자금 사용처 등에 비춰 형사책임의 유무 및 범위에 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횡령 혐의가 구속 여부에 결정적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경찰은 성매매 및 알선 혐의 단독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안과 횡령혐의를 더하는 안 가운데 후자를 선택했다. 처벌수위가 높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이끌어낸다는 전략이었지만 다툼의 여지를 남긴 셈이다.

20차례 가까운 조사횟수 역시 논란이다. 당초 성접대 의혹이 불거지며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이씨가 포함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대화를 근거로 식품위생법위반, 성폭력처벌법 등 여러 혐의로 수사대상을 넓혀왔다.


이 때문에 객관적 물증 확보 후 마지막으로 당사자를 조사하는 통상 수사와 달리, 이씨는 피의자 소환만 12차례, 총 18차례 소환조사를 받았다. 18차례 모두 조사에 응하면서 구속영장 판단의 한 축인 '도주우려'에서 면죄부를 받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영장실질심사도 도주우려보다는 나머지 축인 증거인멸 가능성에 맞춰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부장판사는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혐의 내용 및 소명 정도, 이씨 등의 관여 범위, 피의자신문을 포함한 수사 경과, 그동안 수집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증거인멸 등과 같은 구속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씨에 대한 조사와 증거 수집이 충분하고 이씨가 도주우려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뒤늦게 구속할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한 법률전문가는 "유명인이긴 하지만 피의자를 18차례나 불러 조사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경찰의 수사방식을 놓고 논란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버닝썬 게이트'의 몸통인 이씨를 구속해 그동안 나왔던 부실 수사 의혹을 떨쳐내려던 경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현 경찰 내 최고 수사인력인 서울청 광역수사대와 지능범죄수사대를 동시에 투입해 전방위적 수사를 벌이고도 구속영잘 발부에 실패한 것. 검경수사권조정 시국에서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게 시기상조라는 여론도 잇따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