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에 화려한 부활 '창문형 에어컨' 이유있는 돌풍

국내 최초 가정용 에어컨은 1968년 LG전자 (97,900원 ▼900 -0.91%)의 전신인 금성사가 만든 '창문형 룸에어컨(GA-111)'이다. 당시 고급가전으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으나 1980~90년대 벽걸이·스텐드형 에어컨에 밀려 뒤안길로 사라진 모델이다.

그랬던 '창문형 에어컨이' 52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주거 환경이 변화하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까지 겹치면서 국내 최초 가정용 에어컨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1968년 금성사가 경향신문에 게재한 창문형 에어컨(GA-111)광고 자료사진./자료=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집 값과 맞먹었던 창문형 에어컨의 귀환최초 창문형 에어컨은 가격이 17만5000원으로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490만원 정도다. 1969년 입주한 국내 최초 시범아파트인 금화아파트 분양가가 30만~40만원 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일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수준이다.

당시 미국 GE사가 판매하던 수입가격이 23만원, 현재 가치로는 약 650만원이라 상대적으로 저렴했지만 쉽게 접할 수는 없었다. 당시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에어컨을 사용하려면 별도전력 공급장치를 설치해야 할 정도로 고급 가전이었다.

최근에는 실속·절전형이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과거에는 부자들의 전유물로 사치의 대명사였다. 전력만 공급하면 에어컨이 가동되는 일체형 제품으로 별다른 기능은 없었다. 최근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는 제품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다.


이후 창문형 에어컨은 4인 가족이 보편화하고 아파트 중심의 주거환경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실외기를 별도로 설치해 냉방능력을 끌어올린 벽걸이와 스탠드 등 몸집 큰 에어컨이 자리를 자치했다. 전력보급도 안정화되면서 집집마다 에어컨이 설치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국내 최초 에어컨 모델인 '창문형 에어컨'이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외면받았던 창문형 에어컨이 주거환경·생활 변화와 품질 개선으로 올여름에는 그야말로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파세코 창문형 에어컨 이미지 /사진제공=파세코

잘 팔리는 창문형 에어컨, 중소 가전 각축전7일 온라인 쇼핑몰 G마켓·옥션에 따르면 최근 한 달(5월2일~6월 2일)간 창문형 에어컨 판매량은 전월 대비 750%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창문형 에어컨 판매량은 62% 늘었다.

발 빠른 중소 가전업체들이 먼저 창문형 에어컨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창문형 에어컨을 출시해 소위 '대박'을 낸 파세코 (9,320원 ▲70 +0.76%)가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다. 올해 소음을 개선한 제품도 두 달 만에 1만대 넘게 팔렸다.

여기에 중소·중견업체들도 잇따라 가세했다. 60년 전통의 여름 가전 강자인 신일전자 (1,748원 ▼15 -0.85%)는 올해 처음 창문형 에어컨을 내놨다. 업체 관계자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판매량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에어컨 업체 강자인 오텍 (4,180원 ▲35 +0.84%)그룹 캐리어에어컨을 비롯해 친환경 보일러로 알려진 귀뚜라미도 창문형 에어컨 시장에 뛰어들었다. 귀뚜라미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10번의 홈쇼핑 방송에서 목표 판매량을 모두 채우는 '완판' 기록을 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창문형 에어컨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기술적으론 어렵지 않은 제품이라 업체 간 마케팅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며 "중고시장에서도 창문형 에어컨 가격이 높아지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주거환경, 실용성 갖춘 '창문형'이 대세창문형 에어컨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환경 변화다. 1인 가구가 대폭 증가했고, 전·월세도 보편화하면서 저렴하고 실용적인 창문형 에어컨이 인기를 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창문형 에어컨 구매층은 20~40대로 상당히 젊은 편이다. 주로 혼자 살거나 신혼부부, 어린 자녀가 있는 소비자들이 창문형 에어컨을 찾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1인 가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1980~90년대는 에어컨과 실외기를 따로 설치하는 분리형이 대세였다. 창문형 에어컨은 외벽을 뚫거나 베란다 별도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기존 스탠드·벽걸이과 달리 일체형으로 부담이 덜하다.

실외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일체형이라 벽을 뚫거나 설치 비용도 없다. 주택 면적이 넓지 않고 이사 가능성이 높은 전·월세 주거형태가 많은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5년된 창문형 에어컨을 LG전자에 기증한 김정환씨와 기증된 에어컨./사진=LG전자

거실만 시원한 에어컨보다 '내 방에만' 따로주거생활 변화도 창문형 에어컨의 인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주거생활이 거실 중심에서 개인 방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에어컨 소비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에어컨 성능도 좋아졌다. 기존 창문형 에어컨의 단점인 소음과 잔고장이 대폭 줄었다. 최근에 출시된 제품 대다수는 에너지 효율도 1등급으로 절전형 제품으로 실용성까지 갖췄다.

가격대가 50만~70만원대로 기존 제품보다 저렴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스탠드형이나 벽걸이 제품이 100만원 안팎이라는 점과 비교해 상당히 낮은 가격이다. 번거로운 설치과정과 추가 비용도 없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창문형 에어컨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실내 생활이 늘어난 가운데 비대면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 에어컨을 택배로 받아 누구나 쉽게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거형태와 환경이 달라지면서 창문형 에어컨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며 "다양한 신제품이 출시되고 갑작스럽게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