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에 당한 '골목사장'님 "맹물 육수? 멸치도 통영서 사는데"

"'육수가 맹물 맛'이라는 방송이 나간 뒤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엄청 오더라구요."

27일 서울 중구 충무로역의 한 국수 가게. 국수를 삶던 사장 정재옥씨(54)는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육수 맛은 조절이 가능하니 싱겁거나 짜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외쳤다. 한 유튜버가 '이 국수가게 육수는 맹물 맛이 난다'는 영상을 올린 다음부터 생긴 습관이다. 정씨는 "코로나19도 괴로운데 유튜브 영상이 더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유튜버의 영상 컨텐츠인 '맛집 리뷰'가 논란으로 번졌다. 업주 허락을 받지 않고 영상을 촬영하거나 허위 사실을 담은 리뷰 영상으로 급기야는 문을 닫는 가게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될 수 있고, 유튜브 영상과 관련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돈 더 주고 통영까지 가서 육수용 멸치 사 오는데"…'맹물 맛' 영상 하나에 '곤혹'

27일 찾아간 서울 중구의 필동멸치국수 외부 모습. /사진 = 오진영 기자

70만 구독자를 보유한 한 유튜버는 지난 2월 이 국숫집을 방문해 멸치국수를 맛본 뒤 "끝 맛에서 섞이지 않은 맹물 맛이 난다"는 영상을 게시했다. 20만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에서 "보통 진한 베이스 육수를 만들어 사용하는데 그 진한 육수에 물을 좀 탄 맛"이라고 했다.

정씨는 이 영상에 "육수 간은 원하면 맞춰 드릴 수 있다"며 "촬영도 몰래 하셔서 저희 가게는 설명도 제대로 못 하고 맹물 국수집이 됐다"고 댓글을 남겼다. 논란이 거세지자 유튜버는 입장문을 내고 "허락없이 촬영한 건 정말 죄송하다"며 "좋다고만 말하는 영상을 보고 싶으시면 차라리 광고를 보시라"고 했다.


정씨는 이 영상으로 문의가 쇄도하고 악성 리뷰가 늘어나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항상 재료값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신조"라며 "맛이 진해지면 손님이 늘어날까 싶어 육수 낼 때 쓰는 멸치를 박스당 3000~4000원씩 더 비싸게 주고 통영에서 구매하는데 '맹물'이라는 말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 국숫집은 SBS 예능 프로그램 '골목식당' 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한창 땐 100여m 떨어진 대한극장까지 손님이 줄을 설 정도였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다. 이날도 가게 안에는 손님 2~3명이 각각 홀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씨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에 국수가 맛없다고 느낄 수 있다"면서도 "멸치국수는 일반 잔치국수와 달리 육수에 물을 타지 않고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물을 넣었다'는 말은 거짓 정보"라고 했다.

그는 유튜버를 고소하거나 법정 대응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정씨는 "우리도 유튜버를 해 봤고 예능에 출연하면서 악성 댓글에도 시달려 봐서 (유튜버가) 지금 얼마나 힘들지 안다"며 "다만 70만명이나 구독하는 방송을 만드는 분이라면 자영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청자가 비판적으로 '맛집 리뷰' 봐야…유튜버는 형사처벌 가능성"

필동 멸치국숫집의 리뷰 영상. /사진 = 유튜브 채널 '하얀트리'

해당 유튜버는 지난해 12월에도 한 간장게장집을 방문해 '음식을 재사용했다'는 리뷰를 남겨 논란이 됐다. 당시 간장게장집 업주가 "사실이 아니다"며 CCTV 영상을 공개했으나 악성 댓글이 이어져 결국 영업을 중단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또다른 유튜버가 '배달원이 음식을 빼돌렸다'는 영상을 올렸다가 해당 브랜드에서 고소를 당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논란이 반복되는 것을 두고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유튜브 내용을 규제하는 법안이 없을뿐더러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미비해 '악성 리뷰'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조회수가 돈이 되는 유튜브 플랫폼 구조 때문에 이같은 영상은 계속 제작될 것"이라며 "주무 부처가 '유튜버 인증제' 등을 도입하는 동시에 시청자가 영상 신뢰도에 의문을 갖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법조계는 허위 사실로 피해를 봤다면 해당 유튜버가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김기윤 변호사는 "맛이 있다, 없다라는 사실만으로 명예훼손이 되지는 않지만 허위사실에 의한 업무방해에 해당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