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국민이 짊어질 몫…전기료 못올린 한전, 20조 적자 위기

"결국 다 국민 부담인데"...전기료 못 올린 한전, 이자만 2조원↑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이달 중순께 한국전력공사가 2분기 전기요금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가 추진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발전업계에선 한전이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연료비 인상분을 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사상 최악의 적자(5조8601억원)를 기록한 만큼, 이번에도 전기요금 인상이 무산된다면 경영난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4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관리인이 전기 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2022.3.14/뉴스1

정부가 올 2분기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하면서 한국전력이 한해 동안 부담하는 이자만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전기료 인상에 제동이 걸리면서 올해 한전의 적자가 20조원 안팎으로 늘어나고, 이에 따라 부채 증가가 불가피해서다.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는 향후 연료비가 떨어질 때 전기요금 인하 여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지적이다.


한전은 29일 '2022년 4~6월분 연료비조정단가 산정내역'을 통해 다음달부터 적용되는 연료비 조정단가가 동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지난해 12월 이미 인상하기로 결정한 전력량 요금과 기후환경 요금 1kWh(키로와트시)당 6.9원만 2분기부터 오를 예정이다.

문제는 연료비 인상분이 요금이 반영되지 못하면서 한전의 적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현재 전기요금 구조에서는 한전이 비싸게 전기를 사서 손해를 보고 싸게 파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8일 기준 평균 육지SMP(계통한계가격)은 1kWh당 195.98원이다. 반면 판매단가는 평균비용의 절반 수준이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전력 판매단가는 1kWh당 108.1원을 기록했다. 한전이 전기 1kWh를 판매할 때마다 90원 인상의 손해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집계한 한전의 올해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영업손실 14조8045억원이다. 신한금융투자와 현대차증권 등은 최근 한전의 올해 영업손익을 19조~20조원 적자로 추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전의 연결 영업손실은 5조8601억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한전의 손해가 빚으로 누적돼 이자부담을 키운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의 부채총계는 145조7970억원이다. 2020년 말 기준 한전 부채가 132조4752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년 사이 13조원 넘게 늘어난 셈이다.

한전이 지난해 부담한 이자비용은 1조9144억원에 달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한전과 같은 AAA등급 회사채의 10년물 이자율은 이날 기준 3.32%다. 올해 영업적자가 약 20조원에 달한다면 부채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올해 연간 이자부담은 2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 러시아 경제제재 등으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한다면 연료비 부담으로 빚은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 한전 관계자는 "부족자금의 규모는 에너지 가격과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따라 변동폭이 심해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한전이 내는 이자는 향후 전기 이용자, 즉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앞으로 대외 환경이 안정돼 연료비가 낮아지더라도 한전이 이자 부담 때문에 전기요금을 충분히 낮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대규모 영업적자 때문에 한전에 빚이 쌓이면서 이자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며 "지금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아서 생기는 이자비용 때문에 추후 내릴 수 있는 전기요금을 못 내리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 올해 적자만 20조"…전기요금 왜곡하는 '연료비 연동제'

정부가 내년 2분기(4~6월) 전기요금을 '사실상' 동결했다. 이날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기계량기 모습./사진=뉴스1

2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가 동결됐다. 연료비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없게 되면서 한국전력은 올해 약 20조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유가 등 연료비에 맞춰 전기요금을 올리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연료비 연동제'가 오히려 전기요금 현실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 (19,800원 ▲170 +0.87%)은 29일 "정부로부터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적용 유보 의견을 통보받아 4월분 전기요금부터 적용될 연료비 조정단가가 ㎾h(키로와트시)당 0원으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는 국제유가와 LNG(액화천연가스), 석탄 등 전기 생산에 쓰이는 연료비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용 전기요금을 올릴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 분기 대비 최대 ㎾h당 3원, 연간 ㎾h당 5원까지 연료비 조정단가를 올릴 수 있도록 했고, 정부는 물가 등 경제상황을 고려해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을 유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2분기 전기요금에 대한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이 유보되면서 올해 들어 인상한 국제유가 인상분은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못할 전망이다. 2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110.67달러로 지난해 말 대비 33.55달러(43.5%)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된 이달 초에는 배럴당 128달러선을 넘보기도 했다.

한전은 "2분기 실적 연료비가 기준연료비인 ㎏당 338.87원에 비해 72.6% 상승한 584.78원으로 산정됐다"며 "16일 정부에 연료비 조정단가의 분기별 조정 상한인 ㎾h당 3원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 생활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고, 지난해 12월 확정한 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 인상분 6.9원이 4월부터 적용되는 점을 들어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하기로 통보했다.

올 1분기에만 국제유가가 40% 넘게 오른 상황에서 정부가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하면서 연료비 연동제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월 연료비 연동제 도입 이후 6개 분기 동안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은 지난해 4분기 단 1차례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지난해 1분기 코로나19 대유행 대응을 위해 내린 연료비 조정단가 3원을 원상복구한 것에 불과하다. 국제유가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한다는 제도 본연의 취지는 사라지고 정부의 정치적 판단이 전기요금을 좌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료비 조정단가가 제자리에 머물면서 한전의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와 민간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들이는 도매가인 SMP(계통한계가격)는 지난달 ㎾h 당 197.32원으로 지난해 2월 75.44원보다 121원 가량 급등했다. 비싸게 사들인 전기를 제한된 가격에 판다는 것으로 팔면 팔수록 적자가 불어나는 셈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최근 3개월 동안 증권사 추정치로 집계한 한전의 올해 영업적자 평균전망치(컨센서스)는 14조8045억원이다.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한전의 연간 영업적자가 20조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선 단계적으로 연료비 인상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하지만, 전분기·전년대비 인상폭을 제한한 연료비 연동제의 구조상 인상 요인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꺾이더라도 그동안 연료비 인상분의 전기요금 반영을 미룬 탓에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전기요금을 내릴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기요금 체계를 연료비 연동제 이전인 '총괄원가제'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총괄원가제는 한전이 연료비를 포함한 구입전력비, 인건비, 법인세 등 원가에 적정수준의 이윤을 더한 총괄원가를 산정한 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요금조정을 신청하면 산업부가 이를 검토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전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요금조정을 인가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폭의 한계를 정해놓은 현행 제도보다 유연한 전기요금 책정이 가능하다는 게 에너지 업계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