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세종시 출근, 새벽5시50분 나섰다가…

'경제부처 과천시대 30년'을 뒤로 하고 세종시 시대가 열렸다. 서울 광화문 중앙청사와 과천청사 공무원 2697명이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새 업무를 시작했다.

세종시 인근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사람들이 다수지만 790여 명은 서울에서 출퇴근을 택했다. 서울역을 비롯해 사당, 신도림, 잠실, 과천 등 수도권 지하철역 15곳에서 27대의 통근버스가 이들을 세종시까지 실어 나른다.


기획재정부에서 가장 마지막에 짐을 싼 기자실이 첫 출근하는 날, 세종시에 거처가 없는 기자도 새벽 5시50분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홍대입구역에서 출발해 세종청사 기자실에 도착하는 데까지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오송역에 내리면 BRT를 탈 수 있는 승강장이 있다.

홍대입구역에선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철도를 이용해 불편이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매진된 KTX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뒀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6시40분 부산행 KTX에 올랐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오송역에 7시34분에 정차한 KTX를 내려 오송역사로 들어서니 '행복도시 BRT 승강장'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승강장으로 걸어가는데 정차해 있는 BRT(간선급행버스)가 긴 몸집을 꿈틀대며 출발하는 게 보였다. 계단을 뛰어 내려갔지만 BRT는 사라진 후였다.


BRT를 황망하게 놓친 10여 명의 사람들이 시간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7시40분 BRT를 놓치면 다음 차는 8시25분이다. 그 사이에 좌석버스는 없다고 했다. 택시를 타면 2만5000원이다. 공항철도, KTX, 택시까지 출근길에만 5만 원을 쏟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겨울에 꼬박 40분을 떨면서 기다렸다.

동변상련 처지에 있던 공무원들이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국토해양부 공무원은 "KTX와 BRT 시간이 이렇게 빠듯하게 돼 있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미리 오셨으면 항의 좀 해주시지"라며 옆에 있던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에게 말을 건넸다.

농림부 공무원은 "그동안 통근버스 타고 다녔는데 자리가 없어 못 타는 바람에 저도 처음 KTX를 탔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공무원은 "어제도 BRT를 놓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택시를 나눠 타고 간신히 출근했다"고 토로했다.

기다리다 못해 수소문해보니 BRT보다 5분 빨리 출발하는 버스가 건너편에 있었다. 일행은 8시20분에 간신히 버스에 올랐다. KTX에서 막 내려 역사를 나온 공무원 10여 명은 버스에 자리가 없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세종시종합청사 내부에는 아직 정리가 마무리되지 않아 자재와 집기들이 복도에 즐비하다.

아침부터 세종청사 사람들은 출근길 무용담을 나누기 바빴다. 구조가 복잡해 사무실을 못 찾은 한 공무원은 동료에게 전화를 했지만 '3G' 신호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휴대폰마저 먹통이 되는 바람에 한참을 헤맸다고 한다.

재정부가 있는 청사동 한켠에 임시 입주한 '하나로마트'에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고단한 출근길 허기진 배를 달래는 공무원들이 많았다. '누구를 위한 행복도시냐', '행복도시는 반어적 표현 아니냐'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오갔다.

통근버스를 타거나 자가용을 끌고 출근하는 공무원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잠실역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온 후배기자는 8시30분이 넘어 기자실에 도착했다.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2시간가량 편하게 잠을 청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올 수 있지만 문제는 '자리싸움'이 치열하다는 것. 본래 출발예정 시간은 6시55분이었지만 출발 20분 전에 45인 자리가 모두 차 일찌감치 출발해버렸다.

다음 한 대 남은 버스마저 자리가 모두 차면 다른 교통수단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인원이 넘치면 증편해 남은 사람들을 태워 오는 곳도 있지만 정확한 정보는 버스기사도 모르고 있었다.

오전 6시20분에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온 국토해양부 출입 기자는 2시간이 걸려 세종청사에 도착했다. 판교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탄 다음 안성을 지나 천안-논산 고속도로로 진입, 세종청사까지 직행할 수 있는 정안IC 연결도로를 타는 경로다. 겨울이면 곳곳에 안개가 끼고 얼음이 어는 데다 차량이 많아 정체가 불가피하다.

ⓒ세종시종합청사에 입주한 공정거래위원회 구내식당. 11시30분부터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줄을 서 있다.

힘들게 출근했지만 점심식사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첫 날 재정부 기자단은 대변인이 미리 마련해 둔 대형버스를 타고 20분 떨어진 대전으로 나가 단체로 중식을 먹었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면 최소한 11시30분에는 가서 줄을 서야 한다.

구내식당 찾아가는 길도 출근길 못지않게 험하다. 재정부 청사동에는 식당이 없어 옆 건물의 농림부나 공정위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재정부 청사동에서 공정위 구내식당을 찾아가는 데만도 15분이 넘게 걸렸다. 11시50분, 이미 식당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고 카드결제시스템도 준비되지 않아 현금결제만 가능했다.

공무원뿐 아니라 이삿짐센터 직원, 청사관리원, 건설현장 사람들이 뒤섞여서 밥을 먹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다들 서둘러 배만 채우고 자리를 떴다.

한 공무원은 "식당이 꽤 있다는 첫마을 아파트 단지쪽으로 가자니 차가 없다"며 "새벽부터 통근버스 타느라 아침도 못 먹었는데 점심 먹기도 힘드니 서글프다"고 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커피 한 잔 할 곳도 주변에는 없다. 공사장에서 먼지가 날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피부가 예민한 사람들은 새집증후군이나 아토피 증상을 호소하기도 하고 두통에 시달리는 공무원들도 적잖다.

점심까지 무사히 넘겨도 퇴근길 고비가 남았다. 세종청사에서 서울 각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버스는 자리가 부족해 출발시간보다 빨리 나가는 경쟁을 해야 하고, KTX를 타려면 오후에 기껏해야 2~3번 운행하는 BRT를 놓쳐선 안 된다. 이날 퇴근시간을 앞두고는 오후 3시45분, 6시15분 단 2번의 BRT만 운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