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스펙'으로 아들 한의대 합격시킨 학부모 덜미

#스무살 A군은 서울의 손꼽히는 명문인 K대 한의예과 2학년생이다. 2013년 입학사정관제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전형에 합격했다.

A군은 고교 시절 교과성적 우수상을 제외하고도 교내외 상장 10여개를 받은 '팔방미인'이었다. 백일장, 영어 말하기대회 등 각종 경연에서 수상한 경력은 물론 봉사활동, 해외체험까지 빈틈없는 '스펙'을 갖췄다.


부모님은 A군의 교육 문제라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치맛바람'으로 유명했던 A군의 어머니는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를 이용해 부정입학을 저지른 범죄자로 전락했다. 그릇된 모정은 아들 A군도 공범으로 만들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대학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필요한 생활기록부 등 각종 서류를 허위로 만들어 K대 한의예과에 부정입학한 A군과 이를 모의한 학부모 이모씨(49·여)와 교사 권모씨(55) 등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이씨에게 돈을 받고 A군의 대학입학을 도운 교사 민모씨(57)는 소속 고교에서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부정 유출한 등의 혐의로 지난 6월 이미 구속 수감됐다.


수면 아래로 묻힐 뻔 했던 A군의 부정입학은 경찰이 민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차명계좌에 입금된 5000여만원의 출처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민씨는 지난 2010년 이씨로부터 A군을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전형에 필요한 경력과 활동에 대한 자료 작성과 지도를 부탁받고 5500만원을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씨는 민씨에 입시자료 제공과 지도첨삭 등의 명목으로 지난 2011년2월부터 2012년2월까지 2500만원만 전달했다고 일부 인정했다. 이씨는 또 다른 교사 권씨에게 경연 대리발표와 교사추천서 작성 대가로 1000만원을 전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민씨는 2010년 10월 '한글날 기념 전국 백일장 및 미술대회'에 A군이 제출할 시 4편을 직접 작성해 제출하게 해 A군의 금상 수상을 도왔다. 또 평소 알고 지내던 모 병원 관계자를 통해 2009년3월부터 2010년5월까지 총 121시간의 봉사활동확인서를 허위로 발급받아 A군이 2차례에 걸쳐 학내 봉사상을 받도록 했다.

권씨는 같은 해 11월 영어토론대회인 'G20 국가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청소년 발표대회'에 같은 학교 전년도 최우수상 수상자를 A군 명의로 대리 출전시켜 A군의 수상을 도왔다. 2011년에도 토론대회에 다른 학생을 대타로 내보내 A군이 상을 챙겼다.

A군과 이씨는 고교 시절 해외체험학습을 다녀온 적이 없는데도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북유럽과 일본 북해도를 다녀왔다고 속여 보고서를 학교에 제출해 생활기록부에 올리기도 했다.

A군은 상당수 허위로 채워진 생활기록부와 관련 서류들을 이용해 2012년 S대 생명과학계열에 합격했으나 자퇴한 후 이듬해 K대 한의예과에 입학했다. 당시 K대 한의예과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5명 모집에 88명이 지원해 17.6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A군이 실제 대학 전형에 제출한 서류들을 보면 봉사활동을 했다고 명시돼 있는 날짜가 해외체험학습 시기와 겹치는 등 수상한 기록만 6건에 이르지만 K대 측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경찰은 A군의 부정입학에 연루된 교사 등을 입건하는 한편 K대와 교육부 등 관련부처에 사건을 통보했다. A군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휴학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K대 입학처장의 경찰 출석을 수차례 요구했고 직접 찾아가 조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며 "당시 전형에 관여한 입학사정관도 확인되지 않아 학부모와의 추가 공모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