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고 우크라 수도로 간 유럽 3개국 정상들…EU는 '난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키예프)에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사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텔레그램 공식 채널 영상 갈무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이기도 한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동유럽 3개국 정상이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키예프)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유럽연합(EU)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EU 회원국은 이들을 EU의 공식적인 사절로 인정하지 않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회원국 내 불협화음이 들린다.

AFP통신·파이낸셜타임스(FT)·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 등 3개국 정상은 이날 폴란드 국경에서 기차편으로 7시간 만에 크이우에 도착했다.


모라비에츠 폴란드 총리는 이날 오후 8시경(한국시간 16일 오전 3시) 트위터에 크이우 도착 사실을 알리며 "우리는 EU 이사회 자격으로 크이우를 방문했고, EU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피알라 체코 총리도 "이번 방문의 목적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에 대한 EU의 분명한 지지를 확인하고,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한 폭넓은 지원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 역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유럽 국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며 이번 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지 재확인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영상=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텔레그램 공식 채널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 영상 메시지에서 "어려운 시기에 (동유럽 3개국 정상인) 크이우를 방문한 것은 (유럽) 지지의 강력한 증거"라며 이들 정상의 방문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FT는 "폴란드·체코·슬로베니아 총리의 이번 순방은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세간의 이목을 가장 끈 방문"이라며 이들 정상이 크이우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향한 러시아군의 계속된 포격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유럽인들의 연대를 표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순방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참석이 예정된 오는 24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정상회의와 EU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하는 나토·EU 정상회의 개최에 앞서 우크라이나에 EU의 지지 의사를 재차 전달해, 해당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및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등을 끌어내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강력한 지지, 나토의 억지력과 방위의 추가적인 강화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체코·슬로베니아는 나토 동맹국이자 러시아 인접 국가로 그간 EU 내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대다수의 EU 회원국들은 동유럽 3개국 정상의 이번 크이우 순방에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4차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유럽 정상들의 크이우 방문은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 될 거란 이유에서다.

동유럽 3개국 정상들은 이번 순방이 EU 이사회를 대신한 방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NYT는 EU 당국자를 인용해 이들이 EU의 공식 사절단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대다수 EU 회원국들은 이들 정상의 행보에 반대하고 있다. 그들이 (EU가) 이행하기 어려운 약속을 (우크라이나에) 남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키예프)에서 러시아 군의 폭격을 받아 아파트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 AFP=뉴스1

한편 동유럽 3개국 정상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만남이 이뤄진 가운데 러시아군은 크이우 점령을 위한 공격을 한층 확대했고, 크이우 외곽에서의 교전도 격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이날 새벽 미사일 공습으로 크이우 중심부에 있는 무기 제조업체와 관련된 건물을 파괴했다. 이 공습으로 민간인이 있는 아파트 2채가 피해를 입었고, 이 중 1채에서는 발생 주민 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연기 흡입으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크이우 외곽에서는 미국 언론인 추가 사망자도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크이우 외곽 호렌카에서 취재 중이던 폭스뉴스의 카메라맨 피에르 자크르제우스키와 그의 컨설턴트가 러시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앞서 전 NYT 기자인 브렌트 르노도 크이우 외곽 이르핀에서 취재 도중 러시아군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