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 어렵지 않아요~" 경매제, 번호표 도입

(서울=뉴스1) 박소영 기자= "수강신청 때문에 밤새 뒤척이다 일찍 서울가는 버스를 탔어요."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조모씨(25)는 어학연수를 마치고 올해 복학을 앞두고 있다. 개강 전까지 고향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가질 참이었지만 수강신청이 실패할까 두려워 결국 서울행을 택했다. 학교 내 인터넷 서버가 교외 서버보다 좀 더 빨라서 수강신청 성공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개강을 앞둔 2월과 8월이 되면 대학생들은 수강신청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과목당 수강인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인기 과목을 듣기 위해서는 수강신청 시간이 되자마자 열심히 마우스를 클릭한다. 하지만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매번 터져나오는 문제에 각각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원활한 수강신청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 밤새지 말란 말이야 '좌석 배부제' 도입


중앙대학교는 예전에 수강신청 당일 교내 서버를 이용하기 위해 나온 학생들로새벽 4~5시부터 중앙도서관 앞이 장사진을 이뤘다.

그러나 오랜 시간 기다리고도 컴퓨터 자리가 없어 정작 수강신청을 못하는 학생들이 나오자 중앙대 총학생회는 '수강신청 컴퓨터 좌석 배부제'를 시행하게 됐다.

이 제도는 수강신청 당일 교내 컴퓨터 사용 권한을 줄 수 있는 번호표를 하루 전날 미리 배부하고 번호표가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수강신청 당일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려고 새벽부터 나와서 추위에 떠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번호표를 배부하게 됐다"라며 "이 제도를 시행한 후부터 학생들이 중앙도서관 앞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번에 처음으로좌석 배부제에 참여한 경제학과 김태연씨(23ㆍ여)는 "어제 학생회실 앞에서두 시간이나 기다려좌석표를 받았다"며 "수강신청이 어려운 부전공 과목 중 1개를 성공했지만 집에서 신청했으면 1개도 성공하지못했을 게 분명하다"고 대답했다.

김씨는 "좌석 배부제가 시행된 뒤 수강신청 당일의 소란은 없어졌다"며이 제도에 긍정하는 한편 "아직 신청하지 못한 강의를 얻기 위해서는 학교 사이트를 수시로 봐야 한다"며 불안해했다.


◇수시로 클릭할 필요없는'번호표 대기제'

김씨 같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건국대학교는 조금 다른 번호표 대기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번호표 대기제는 수강신청 당시 원하는 과목 신청에 실패했을 경우 번호표를 받으면 다른 학생이 그 과목을 빠져나갈 때 문자를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문자를 받고 일정 시간 안에 해당 과목을 수강신청하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차순위 대기자에게 넘어간다.

건국대 관계자는 "이번 학기부터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프로그램이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았고 여러가지 보완할 점이 많아 보류했다"고 밝혔다.

건국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정훈씨(23)는 번호표 대기제 프로그램에 대해 "여석이 남았는지 수시로 학교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 초조하거나 번거로움은 없어질 것 같다"고 했지만 "대기 번호표를 어떤 기준을 부여할 지 명확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포인트 걸고 수강하는 '경매제'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는 이번 학기부터 국내 대학 최초로 수강신청 경매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우선 이그제큐티브 MBA(주말집중) 과정에만 적용되는데 학생들에게 가상 포인트를 지급하고 수강을 원하는 강좌에 포인트를 걸어 최고 입찰자 순으로 수강 정원을 채우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수강신청 전 1학년은 1000포인트, 2학년은 1.5배인 1500포인트등 가지고 원하는 강좌 경매에 참여한다.

강좌를 낙찰받은 후 취소하면 낙찰 포인트의 절반만 돌려받아 신중하게 수강계획을 세우고 경매에 임해야 한다.

이 방식은 이미 미국 유수 MBA인 시카고, 스탠포드, 버클리, 예일, MIT, 컬럼비아, 미시간, 코넬 등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에서는 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5000포인트를 받은 뒤 이를 듣고 싶은 과목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수강신청이 이뤄진다.

서울대 MBA 관계자는 "이그제큐디브 수강생만 180명으로 보통 한 강좌당 수강 인원은 50명이기 때문에 학부 수강신청처럼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누가 먼저 전산망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수강권을 갖기 보다는 경매제를 통해 학생들의 과목 선택 기회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또"처음 시행하는 제도라서 혼란스러운 점도 있겠지만 점차 MBA 풀타임 과정과 학부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숭실대 관계자는 "수강신청의 근본적인 문제는 서버나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취업에 도움이 되는 강좌만 학생들이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또"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보다 많이 수강할 수 있도록 매년 인기 강좌를 늘리고 있지만 학원처럼 원하는 대로 전부 늘릴 수는 없다"며 한계를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