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이 '을'인 농협, 신동규 회장 사임 이유?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사진=임성균 기자

#15일 오전 11시30분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임원들을 급히 소집했다. 갑작스러운 소집에 어리둥절하던 농협금융지주 임원들에게 신 회장은 문서 한 장을 보여줬다.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사의 표명' 보도자료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임' 소식에 임원들이 재고를 요청했지만 신 회장의 의사는 단호했다. 그리고 농협금융은 오후 12시25분 신 회장의 사의 표명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1시간여 동안 농협금융지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느닷없는 사의 표명이지만 금융권에서는 그동안 신 회장이 농협이라는 특수한 조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직함은 '금융지주 회장'으로 최고경영자(CEO)이지만 본인 위에 농협중앙회라는 상전이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인 농협은 조합원이 주인인 조직이다. 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3월 농협 사업구조개편 때 신용사업과 금융사업을 분리하면서 탄생했다. 조합원들을 대표하는 농협중앙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장 위에 농협중앙회장이 있는 구조다. 다른 금융지주회사와 달리 금융지주 회장이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이 최원병 농협중앙회장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정부 관계자는 "신 회장은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본인의 뜻에 따라 회사를 이끌고 싶었지만 농협중앙회 산하 조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인사나 경영전략 수립 등에서 자율권이 상당히 제한돼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반대로 농협 입장에서는 신 회장이 농협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동화되지 못하는 모습에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신 회장도 이날 임원회의에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농협금융지주는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이 있고,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서)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해 이 같은 조직적 특수성이 사의 표명의 큰 이유였음을 시사했다.

사의 발표 시점이 15일인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신 회장은 새 정부 출범 후부터 사퇴를 놓고 고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사퇴압박을 받고 잇따라 사임하면서 본인도 거취에 대해 고민해 왔다는 것. 신 회장은 지난해 5월 취임할 당시 '낙하산 논란'을 빚으며 노동조합의 반발을 사기도 했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정작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은 본인이 아니라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MB맨 회장'으로 지목돼 사퇴 압박을 받은데 대해 불만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원병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동지상고 후배로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힌다.

농협중앙회와의 갈등과 함께 농협금융그룹의 저조한 실적, 최근 잇따른 전산사고도 신 회장의 사의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로 농협중앙회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568억원으로 전년 7029억 원에 비해 63% 감소했다. 농협금융지주의 실적 부진 영향이 컸다. 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3월 출범과 함께 연간 1조128억원의 순익 달성을 목표로 내놨지만, 연간(3월~12월) 순이익은 4500억원에 그쳤다. 연간으로 환산해도 목표의 절반인 5400억원에 불과했다.

농협금융은 또 3월20일 전산망 완전 마비에 이어 4월에 인터넷뱅킹이 중단되는 등 전산사고가 잇따랐고 금융감독당국이 CEO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농협 인터넷뱅킹 중단 사고가 발생하자 "신동규 회장도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