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의 사진 이야기···"진정 보고싶은 걸 담았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아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관악산 정상부의 암벽입니다. 한 산행객이 순탄한 길을 마다하고 험난한 암벽을 홀로 힘겹게 오르고 있습니다. 멀리서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라 이 사람에 대해 더 이상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사진을 바라보는 저는 이 사람이 '50대 중년의 남자'일 것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입니다.

한 가정의 생계를 배낭처럼 어깨에 짊어진 가장으로서 지난 20년 묵묵히 암벽을 올랐고, 아직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 암벽의 중간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아버지 남자' 말입니다. 저는 그가 암벽 중간에서 쓰러지거나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기를 기도합니다. 마침내 정상에 이르러 시원한 바람에 온 몸의 땀을 씻으며 탁 트인 '서울'을 아주 편안해진 마음으로 쳐다보기를 희망합니다.


또 다른 사진 한 장에 역시나 저의 눈이 오랫동안 머무릅니다. 어스름한 초저녁, 사무 가방을 들고 양복 정장을 갖춰 입은 중년의 사내가 도시의 현란한 네온사인 빛 사이를 홀로 걷고 있습니다. 사내가 흔들리는지 그를 보는 사진가의 셔터가 흔들렸는지 그의 영상은 두세 겹으로 겹쳐 흔들립니다. 고(故) 박완서 작가의 장편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진집의 제목 '아타락시아 Ataraxia'는 '정신의 안정, 평정, 침착,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는 고요한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사진집을 펴낸 정현진 작가는 프로가 아닌, IT(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1남 2녀를 둔 사십 대 가장입니다. 직장생활 틈틈이 카메라를 둘러메고 밖으로 나다녔던 그가 작품들을 정성스럽게 모아 사진집을 펴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 나이쯤 되면 합창단에 들어가 볼까, 직장인 연극 동호회에 가볼까, 색소폰 연주를 시작해볼까, 댄스를 배워볼까, 배낭 메고 전국을 유랑해 볼까…. 젊어서 간직했던 꿈을 생각하며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정현진 작가는 그런 우리들에게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밖으로 움직이세요. 아직도 늦지 않았답니다'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입니다.


프로 사진가의 고급 기술이나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진은 없습니다. '잘 찍기보다 진정 보고 싶은 것들'을 담았습니다. '형상, 사유, 동심, 사랑, 행로, 장면'으로 구획된 사진들은 일상에서 잡아낸 잔잔한 사유의 창을 통해 잠시나마 혼탁한 뇌를 씻어줄 것입니다.

◇아타락시아(Ataraxia)=정현진 글·사진. 파랑새미디어 펴냄. 324쪽. 2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