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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선의 유럽여행기]친절과 배려의 공공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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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0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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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0유로를 내야 이용할 수 있는 유럽 공중화장실

[편집자주] 필자는 23년간 IT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벤처 기업가로, 전문경영인으로서 종사한 IT 전문가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그는 최근 7년간 몸 담았던 안랩의 CEO를 그만 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면서 그는 최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여행이야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고, 또 전문가들의 여행기도 많다. IT 경영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행의 단상은 어떨까. 바쁜 일상으로 출장 외에 여유있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CEO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쯤으로 시리즈를 연재한다. 여행경로는 로마에서 시작해 나폴리-피렌체-베니스-밀라노-파리까지. 20일간의 여정이다.
알토 다리 베네치아의 번화가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 /사진=김홍선
알토 다리 베네치아의 번화가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 /사진=김홍선
국외에서 단체 여행을 할 때에는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것이 화장실 문제다. 이제는 투어 그룹에서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다 보니 더욱 조심스럽다. 그래서 자주 가지 않으려고 커피나 차도 자제하면서 나름 노력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공공시설이 깨끗한 편이다. 어느 외국 손님이 대전에 출장 다녀오고 나서 어떠했느냐고 물으니,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한다. 이렇게 깨끗한 대로변 화장실은 처음 본다며 손을 추어올린다. 사실 우리만큼 깨끗하게 잘 관리하는 나라도 드물다. 그만큼 청소하시는 분들이 수시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유적이 많은 이탈리아에는 공공 화장실이 흔하지 않다. 지하철역이나 공공장소 곳곳에 화장실을 볼 수 있는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베네치아에서 화장실 표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리알토다리에서 표지판을 봤는데, 골목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니 그제야 화장실이 있다. 그것도 유료다. 동전을 기계에 넣게 되어 있는데 무려 1.50유로다.

“아니 화장실 한 번 이용하는데 도대체 얼마를 받는 거야?”

비싸서인지 사람도 별로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수고가 아까워서 이용하기로 했다. 마침 1유로 동전 2개가 있어서 기계에 집어넣었다. 게이트가 열려서 들어가기는 했는데, 왜 그런지 거스름돈이 나오지 않는다. 기계와 씨름하는 것을 보던 어느 중년 여성이 안에서 나오며,

“나는 잔돈을 거슬러 줄 수 있지만, 기계는 그럴 수 없답니다”라고 얘기한다. 50센트를 포기하라는 얘기다. 왜 자기에게 미리 묻지 않았느냐는 투다. 그녀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종업원인지, 손님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적어도 돈 바꾸어 주는 사람이면 그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계가 못 내어 주면 직접 바꾸어 주는 게 당연하다. 혼자 투덜거리면서 그곳을 나왔다.

산마르코 광장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진 산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사진=김홍선
산마르코 광장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진 산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사진=김홍선
그나마 파리의 마레 지역은 그런 유료 장소도 없다. 상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화장실 가려면 근처 카페에 가라고 태연스럽게 말한다. 한 마디로 커피 한 잔 비용은 지급하라는 얘기다. 고만고만한 규모의 상점들이 모여있다 보니 공공 화장실은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다. 그래도 꽤 넓은 지역인데 공공성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게 아쉬웠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화장실 내부다. 피렌체의 백화점에서 경험한 일이다. 그곳에 화장실은 5층에만 있었는데, 올라갔더니 7~8명 정도가 줄 서 있다. 한 참을 기다리고 나서 들어갔다 나오기는 했는데, 약간 어리둥절했다. 변기 뚜껑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큰일을 보려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의외로 이런 상태의 화장실을 자주 보았다. 이탈리아 도시만 그런 게 아니라 파리에서도 경험했다. 하도 궁금해서 현지에 사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그분 얘기로는 관리하기 귀찮아서 그대로 두는 거라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믿을 수 없다. 한국에서 데려온 자녀에게 그런 환경에 당황하지 않도록 일부러 교육까지 했다고 한다. 도저히 유럽 선진국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충격적인 현장이다.

공공시설과 문명의 품위

문명이 발달할수록 품위있는 생활을 영위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모임에서 우리 주변에서 지난 100년 간 가장 크게 바뀐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강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의 답은 ‘화장실 문화’이었다. 그러면서, 조선 시대부터 일본 강점기, 한국 전쟁, 현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이 담긴 기록을 보여 주면서 이를 설명했다. 경제 성장의 효과도 컸지만, 그만큼 더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했고 시민 의식이 발전한 탓이다.

그러나, 한국의 깨끗함은 시민 의식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나는 ‘배려’의 정신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여행에서 돌아오면 한국만큼 깨끗한 나라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실제로 평생 외교관으로 일하셨던 분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파견지를 정할 때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나라가 채 10개 국가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이 가장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밀라노 갤러리	두오모 긴처 유명 쇼핑가 (밀라노) /사진=김홍선
밀라노 갤러리 두오모 긴처 유명 쇼핑가 (밀라노) /사진=김홍선
그래도 유럽에서 경험했던 사건들은 무언가 무시당한 느낌이다. 방치된 관리 탓인지 무관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여행객과 사람들이 오가는데 공공시설의 관리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한 마디로 배려가 없다. 친절함과 따뜻함은 진정한 배려의 정신에서 나온다.

80년대 유학을 갔다가 들어올 때 김포 공항에 입국하면서 무언가 어두운 분위기를 느낀 적이 있다.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해 보인다. 나도 그런 환경에서 줄곧 자랐는데 단 몇 년의 국외 생활에서 이런 차이가 느껴지다니…. 당시만 해도 우리는 미국에 비해 무언가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다. 한국이 훨씬 친절하고 밝다. 외국인들도 한국의 밝음을 좋아한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경직됨은 많이 사라지고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보인다. 그런데 중국 공항에서 80년대 한국 공항에서 경험했던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걸까? 공항도 한국에 비해 어두운데, 극히 사무적인 표정은 당황스럽다. 어떤 담당자는 자국민에게 신경질을 내기까지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그랬다가는 어떤 취급을 받겠는가? 알게 모르게 우리 스스로 변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피렌체 상점가	베키오 다리 위의 오래 된 상점가 (피렌체) /사진=김홍선
피렌체 상점가 베키오 다리 위의 오래 된 상점가 (피렌체) /사진=김홍선
한국이 좋아서 오는 외국인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당연히 넓은 가슴으로 환영해야 한다. 우리의 좋은 이미지는 한국의 위상을 더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깨끗하게 정리하고, 치밀하게 관리하는 공공시설 속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에 일본의 친절함을 배우라고 했건만, 한국의 친절함은 그것과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친절과 배려는 유럽 여행에서 새삼 재발견한 우리의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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