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나면 친구…일본은 왜 그러지?" 게임에 녹아있는 한·일 문화의 차이

일본 만화에서는 왜 싸우고 나면 다 친구가 되는 걸까? 심지어 일본의 장기 '쇼기'는 적이 아군이 될 뿐 아니라, 졸병이 장군이 되는 '업그레이드' 시스템까지 갖췄다. 같은 원류의 게임도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 속에 녹아들면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한다. '쇼기'와 '장기'를 비교하다 보면, 그 안에서 한·일 문화의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장기(將棋)'의 원류가 되는 게임은 인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게임이 중동과 유럽으로 전해 내려와 '체스(Chess)'가 됐고, 중국으로 넘어가서는 '샹치(象棋)'가 됐으며, 그 샹치의 변형이 우리가 즐기는 '장기'다. ('캔디 크러시 사가'와 '애니팡 2' 같다 할까?)

한편 동남아시아에서도 체스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특별한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이 일본으로 넘어가 발전한 것이 일본식 장기 '쇼기(将棋, しょうぎ)'다. 이 쇼기는 세계 어느 나라 장기와 비교해도 매우 독특하고 특징적인 요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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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 하거나 '아군'이 되거나?


장기와 비슷한 게임 대부분은 두 진영의 기물 색이 다르다. 그러나 쇼기는 색이 같고, 모든 기물이 뾰족한 5각형으로 되어 있다. 적과 아군의 구별은 저 뾰족한 부분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로 구별된다.

그리고 쇼기는 자기 차례에 자기 기물 하나를 움직이는 않는다면, 그 이전에 잡은 적 기물 하나를 아군으로 놓을 수 있다. 놓을 수 있는 위치의 제약도 적어, 이전 차례에 잡은 기물을 바로 적을 위협할 위치에 둘 수 있다. 승기를 잡은 군대는 점점 수까지 불어나게 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통일왕조가 오래 집권하는 편이었지만 일본은 사정이 달랐다. 날마다 전쟁이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기 보다 강한 쪽에 항복해 편입되는 길을 택했다. 이긴 쪽으로서도 강한 적을 아군으로 흡수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었을 테고.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전략적으로 큰 오판을 하게 된다. 왕이 일찌감치 도망쳤으니 백성이 항복해서 흡수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백성들의 저항은 예상 못 한 변수였다.

어쨌든 이런 정서는 '드래곤볼'이나 '원피스' 같은 소년 만화의 전개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는 보통 스토리가 약간 전개된 이후에는 아군으로 바뀌곤 하며, 그 수는 점점 불어난다.

만화 '드래곤볼'의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 피콜로(좌)와 베지터(우)

다채로운 승급

한편 장기와 비슷한 게임에는 적진 끝까지 돌격한 졸이 강력한 기물로 업그레이드되는 '승급'의 개념이 있다. (한국과 중국의 장기는 졸이 좌우 이동도 가능해 강력한 대신 저런 업그레이드가 없다.)

쇼기는 놀랍게도 말단 졸병이 아니라도 대부분 승급이 가능하다.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는 것이 가장 좋은 출세의 수단이라는 그 당시 가치관을 반영한 것일 테다.

체스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승급 상황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전쟁터에서 영웅 하나가 나타나 전세에 영향을 주는 느낌이다. 반면 쇼기는 승기를 잡으면 너도나도 강력해져서 군단 전체가 강해지는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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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전쟁터에는 기자도 방송도 없으니 공을 세우는 순간 '내가 공을 세웠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일본에서 창작한 삼국지 작품들이 이를 조금 요란하게 강조하는 느낌이 있다. '진삼국무쌍'이나 '천지를 먹다' 같은 게임이 그러하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보스를 물리친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옛날 전쟁터에서는 그보다 더 요란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기물 하나하나가 승급하는 순간마다 "△△현에 사는 보병 ○○○는 이제부터 '졸병'이 아니라 '중대장'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 PR을 하기 위해 안달 난 전쟁터다.

"일본식 장기 쇼기가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게 발전했다"라고 하면 실제로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장기가 더 재미있고 깊이 있거든?"이라고 감정적인 반론을 하곤 한다. 이런 주장은 애국도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저 '3월의 라이온'을 비롯해 쇼기를 묘사한 일본 서브컬쳐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는 한편, 쇼기의 발전 과정에 일본인들의 문화나 정서가 반영됐다는 '과학 반, 구라 반'의 '썰'을 풀어내고 싶었을 뿐이다.

한·중·일의 장기 중 어느 쪽이 우월하다는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제발 릴랙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8월 7일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