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개점휴업 벤처캐피탈 '풍요속 빈곤'

벤처캐피탈업계가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에 힘입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일부 벤처캐피탈은 자본잠식에 빠지거나 1년간 투자실적이 전무해 시정 명령을 받는 등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이같은 '부익부빈익빈' 현상 속에 벤처캐피탈업계의 구조조정도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토러스벤처투자는 지난 5월 자본잠식률 51.6%를 기록,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으로부터 경영개선 요구를 받았다. 당시 토러스벤처투자에 남아있던 자본금은 44억원으로 납입자본금(91억원)의 절반 이상을 까먹었다.

토러스벤처투자는 6개월 후인 오는 11월말까지 자본잠식률을 50% 미만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만일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심사 과정을 거쳐 퇴출 절차를 밟게 된다.


중기청 관계자는 "토러스벤처투자는 자기자본(PI)을 투자한 과정에서 손실을 입어 자본잠식으로 이어졌다"며 "6개월의 치유기간 동안 자본잠식률을 50% 미만으로 줄이지 못하면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추가로 3개월 여유를 준 뒤 그 이후에도 재무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퇴출된다"고 설명했다.

토러스벤처투자는 지난해말 마지막으로 남은 'TVC제3호투자조합'을 청산했다. 현재는 운용 중인 펀드가 없어 추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유상증자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토러스벤처투자 관계자는 "현재로선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투자 이익금 등을 통해 자본잠식을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신창업투자와 아이원벤처캐피탈은 최근 1년간 투자를 집행하지 않은 '개점휴업' 상태를 지적받았다. 영신창투는 지난달말 광주의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벤처기업에 CB(전환사채)를 투자해 중기청의 시정명령을 이행했고, 아이원벤처캐피탈은 최근 투자처 주금납입을 완료, 미투자 사유를 해소했다. 아이원벤처캐피탈 관계자는 "투자 업체를 신중하게 고르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된 것"이라며 "최근 신규 인력 채용에 나서며 적극적인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벤처캐피탈업계의 양극화는 뚜렷하다. 실력이 검증된 대형 업체로 돈이 몰리고 있어 풍요속의 빈곤이 지속되고 있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상위 10개 벤처캐피탈의 펀드 규모는 4조1615억원(약정금액 기준)으로 전체(11조4719억원)의 36.3%를 차지했다.


한국투자파트너스가 가장 많은 6723억원이었고 LB인베스트먼트(6101억원),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4,997억원) 순이었다. 반면 자본금 고갈과 장기간 투자실적이 없었던 무한투자 등 2개 벤처캐피탈은 등록 말소됐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자생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정부의 지원에 기대 연명하고 있는 벤처캐피탈이 적지 않았다"며 "과거 정책자금을 받았던 업체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펀드 만기 후 신규 투자금 유치에 실패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