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보팅 폐지 불안감 증폭…감사선임 임시주총 '폭주'

#코스닥 상장사인 자동차부품전문업체 A사의 이사들은 지난 17일 오전 본사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감사위원 Y씨의 재선임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 건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감사 Y씨는 2012년 9월 선임돼 임기가 9개월가량 남았지만 미리 임시주총을 열어 재선임을 하기로 했다. 내년 '섀도보팅'(Shadow voting) 제도 폐지에 따라 감사선임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향후 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임시 주총 승인 건은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임시주총 소집일은 내달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년 섀도보팅 제도 폐지를 앞두고 기업들 사이 주주총회 무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다수 기업이 올해가 가기 전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해 주요사안 처리에 나서면서 기업들의 임시 주총 결의가 전년 대비 4배 이상 폭증하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임시 주총을 결의한 기업은 총 154개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6개사 대비 328% 증가한 수치다.

이들 기업은 모두 올해 안에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 감사 선임 등 향후 주주총회가 무산될 경우 상장폐지 위협이 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을 안건으로 올렸다. 일부 기업은 안건을 정하지도 않은 채 임시 주총 소집을 결의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임시 주주총회 소집에 분주한 이유는 내년 1월 1일부터 섀도보팅 제도가 폐지되기 때문이다. 섀도보팅 제도란 상장기업이 주주총회 의결정족수가 부족할 때 예탁결제원에 주주들이 맡긴 주권에 대한 의결권 대리행사를 요청하는 제도다. 섀도보팅 제도는 기업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대표이사 선임, 감사 선임 등 경영상의 주요한 결정을 자의적으로 내린다는 비판에 따라 지난해 5월 폐지가 결정됐다.


그러나 섀도보팅 제도 폐지에 따라 기업들 사이에 내년 3월 '정기주총 대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주주총회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감사 선임의 경우 현행 상법상 최대 주주가 아무리 지분이 많아도 3%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 의결정족수(총 주식의 25%)를 맞추기 위해 소액주주로부터 찬성표 22%를 추가로 얻어야 해 가장 큰 문제로 꼽히고 있다. 또 선임에 실패할 경우 관리종목에 올라 상장폐지까지 거론될 수 있어 일부 기업은 감사의 임기가 남았음에도 미리 재선임에 나서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 섀도보팅 제도를 이용해 최대 3년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다.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감사의 임기 만기 이전에 임의로 임시 주총을 결의해 감사를 재선임하거나 신규 선임하는 것은 주총은 물론 감사 업무의 도입 취지와도 배치되는 행위"라며 "투자자의 권리를 빼앗고 불안감을 일으킬 수 있는 이 같은 행태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감사를 선임해야 하는 12월 결산 상장사는 총 620여 곳에 달한다. 현행법상 주총 소집일 2주 전에만 투자자들에게 주총 소집을 고지하면 돼 향후 임시 주총 소집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송 연구위원은 "섀도보팅 제도 폐지를 코앞에 둔 만큼 각종 꼼수나 제도 완화 등을 주장하기보다는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정보 제공과 교육을 통해 주주들의 경영 참여 확대에 나서야 할 때"라며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고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