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새책]어려운 자본시장법, 책 한 권으로 이해한다

현대 자본시장에서 투자자 보호는 일종의 '구호'가 됐다. 투자자 보호에 위배되는 기업과 금융회사의 활동은 웬만한 범법 행위 이상으로 비난받는다. 투자자는 개인투자자 즉 '약자'로 도식화되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이 종종 투자자 보호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도 그 구호가 정치적으로 섹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투자자 보호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모두가 공유하지만, 구호만 외쳐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긴다. 투자자는 얼마나, 어떻게 보호돼야 하는가 하는 다분히 철학적이면서도 실무적인 물음들이다.

질문을 구체화하면 가장 중요한 투자자 보호의 방법인 기업정보 공개(공시)는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가, 반대로 증권의 발행이나 자산 매각 등에 나선 기업이 보유한 정보를 알리지 않을 권리 '침묵권'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나 등이다. 아마도 자본시장에 종사하는 어지간한 전문가들도 이런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 짐작된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새로 쓴 책 '자본시장법 이론'(박영사)은 이에 대한 법률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동시에 자본시장법이 지나치게 투자자 보호주의로 흐르는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저자는 자본시장법의 입법 목적은 국민경제의 발전이라고 강조한다. 즉 투자자 보호는 이같은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투자자 보호를 도외시하자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 보호와 금융투자업의 발전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골드만삭스, 금융의 삼성전자를 꿈꾼다면 하부구조인 법률도 발전과 보호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투자자 보호와 연관된 유가증권 시장의 사기 규제와 공시 규제 내용을 소개한다. 정보 공개를 둘러싼 다양한 법적 이슈와 판례들을 제시하면서 거래 효율성과 투자자 보호가 상충할 때 법률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여준다. 1부를 읽으면서 최근 자본시장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감독당국의 공시 강화 추세와 공시 요구가 너무 지나쳐 유가증권 발행 효율성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투자은행(IB) 업계의 불만이 떠올랐다.

2부에서는 파생상품, 그림자금융, 신용평가, 사모시장 규제, 주식 거래, 기업 인수합병(M&A) 등 최근 부각되고 있는 여러 금융상품과 자본시장 거래 관련 이슈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법적인 이해를 돕는다.

법 이론에 대한 해설서인데다 제목부터 무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니 읽기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운 자본시장법의 맥락을 230 페이지짜리 단행본으로 정리해 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저자가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법을 1년 간 공부하면서 발표한 4편의 논문을 보완해 엮은 책이다. 법과 자본시장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풍부하게 보유한 저자이기에 가능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김화진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 독일의 뮌헨대학교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제금융과 국제M&A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전문위원,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자문위원,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약했다. 현재 금융투자협회 공익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화진 지음 △박영사 △1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