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의 와인 '목욕하는 클레오파트라'

샤토 마고 전경 및 샤토 마고 와인/사진제공=고재윤 교수,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많은 명사들이 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수 백가지의 와인 가운데 유독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 경영철학, 명예, 취미 등 자신을 대변해 줄 와인에 얽힌 에피소드 때문이다.

저온살균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미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는 "한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도 더 많은 경영철학과 자신 만이 추구하는 세계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2015년 1월 19일 오후 6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임임원 만찬 자리는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마시는 와인 때문에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이날은 이건희 회장이 장기 입원으로 불참한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새해 그룹 경영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였다.

와인 애호가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은 2010년 전국경제인연합 만찬장에 '샤토 라뚜르(Grand vin de Chateau Latour)' 82년 산 와인을 소개한 뒤 이 와인은 세간의 화제가 됐고 이 후 각종 모임에서 이 와인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올해 삼성그룹 신임임원 만찬일 하루 앞두고 프랑스 남부 론 지방에서 3대에 걸쳐 내려온 유명한 와인인 '이기갈 지공다스 (E. Guigal, Gigondas)'가 공식 만찬주라고 알려졌지만 행사 당일 삼성이 와인 대신 국순당 복분자주 ‘명작’으로 서둘러 대체하는 바람에 이재용 부회장의 와인은 아쉽게도 공개 석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만찬장에서 “젊은 신임 임원들에게 기를 많이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건강관리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날 사용된 공식 만찬주 명작은 '최고의 전통주로 건강한 생활과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데,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고, 신임임원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직장 생활을 통해 삼성의 미래와 경영성과를 부탁하기 위해 건강을 상징하는 복분자 ‘명작’을 공식만찬주로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와인 애호가로 알려진 이 부회장이 즐겨 마시는 와인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즐겨마셨던 프랑스 샤토 라뚜르 외에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마고 (Chateau Margaux) 와인, 미국의 컬트 와인 스크리밍 이글 (Screaming Eagle) 그리고 부르고뉴 와인 등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샤토 마고 와인을 가장 즐겨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독(Medoc) 지역은 마고(Margaux), 캉트낙(Cantenac), 라바르드(Labarde), 아르삭(Arsac), 수상(Soussans) 5개의 지자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와인 라벨에 출산지인 마을 이름이 일일이 표시될 정도로 각각 특색이 있다. 각 마을의 떼루아, 즉 환경과 토양은 다르며 맛에도 차이가 있는데 캉트냑의 와인은 산과 타닌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라바르드의 와인은 바디감이 무겁고 단단하고, 마고의 와인은 타닌이 풍부하고 깊은 맛에 장기 숙성해야 자신의 개성이 들어난다.

생테스테프, 포이약, 생줄리앙의 세 마을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마고는 따로 남쪽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메독 지역 중 다른 세 지역의 와인과 확연히 다른 맛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샤토 마고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522년~1582년에 피에르 드 레스토낙(Pierre de Lestonnac)이 이곳 땅을 경작하여 곡물과 포도를 재배한 기록이 있다.

1705년 런던 가제트(London Gazette) 신문에 첫 영국 진출을 알리는 기사가 있고, 또한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1784년 빈티지 와인을 마시고 “보르도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와인이 없다.”고 평가할 정도로 유명한 와인이다.

샤토 마고는 한때 한국에서 와인 신드롬을 일으킨 만화책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시즈쿠가 ‘목욕하는 클레오파트라’에 비유한 와인이며,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가 가장 사랑한 와인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손녀의 이름을 '헤밍웨이 마고'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였다.

또한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1990년, 1999년, 2000년, 2009년 빈티지를 99-100점으로 평가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한 샤토 마고는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이자 와인의 여왕으로서 명성이 높다. .

한국의 자존심이자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삼성이 영원한 여왕자리를 지키면서 차별적 경쟁우위를 지키려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철학이 샤토 마고 와인 한잔에 담겨 있지는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본다.

/캐리커처=임종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