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적산(敵産)도 유산… 사실 그대로 봐야, 미래 있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밝히지 않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일본 하시마섬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일 역사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일본은 끊임없이 감추려 하고 우리는 계속 알리려 하는 이유는 일본의 '기록'이 '있는 그대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착한 일본인' 이야기는 어떨까. '목화꽃과 그 일본인'은 일본 외교관으로서 조선으로 건너와 26년을 살았던 와카마쓰 도사부로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남산의 부장들'로 익히 알려진 김충식 가천대학교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61·2기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가 이번엔 '오해받을 수'도 있는 책을 썼다. 그도 최근 불편한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저술 동기를 설명한다.

"불편하지만 우리 삶의 영향을 미치거나 기여한 (일본)사람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도 한국 근현대사에 영향을 미친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분발하자는 의미죠."

1978년부터 30년간 기자생활을 한 김 교수는 '사실' '있는 그대로'라는 말을 수차례 언급했다. '의견은 자유롭지만, 사실은 신성하다(Comment is free but facts are sacred.)'는 저널리즘 분야에서 유명한 문구를 말하면서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목화꽃과 그 일본인'에서 김 교수는 와카마쓰가 우리 근대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수치 자료를 토대로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목화와 소금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목화는 미국산 개량종 육지면이 재배되기 시작했고, 바닷물을 끓여 만든 자염이 아닌 천일염이 대량으로 생산됐다. 그 중심에는 와카마쓰라는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은퇴 후 고향인 교토로 돌아가서도 재일조선인의 기본권을 대변하기 위해 애썼다.

김 교수는 "처음부터 목적이 일본이라는 (자신의) 국익을 위한 것인데 한국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고, 정서적으로는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적이 남긴 유산 '적산(敵産)'도 우리의 유산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간 '목화꽃과 그 일본인' 저자 김충식 교수 인터뷰/사진=박찬하 인턴기자

적산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더 낳은 미래를 개척하는 자산이 된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 교수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문 일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조선인 세금으로 조선인 인부가 만든 것인데 일제의 유산이라고 허문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낱개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다시 만들려는 움직임에 대해 김 교수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전쟁, 절대 빈곤을 이겨내야 하던 시절에는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정해진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쓸데없는 국수주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필자에 따라 다양한 국사책이 존재할 수 있는데 한 쪽으로만 기록하는 것은 문제라는 의미다.

그는 와카마쓰를 재조명하면서 한일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어 했다. 이후 책으로 소개하고 싶은 인물로 '홍사익 중장'을 꼽은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홍사익 중장은 조선인 일본육사 장군이다. 창씨개명을 안 한 독특한 인물인데, 세계대전에서 필리핀 포로 수용소장으로 일했고, 일본이 패전하면서 사형을 당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한 조선인 일본자살특공대의 실화를 듣고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탈영을 권하는 부모에게 그가 '조선인인 내가 탈영하면 다른 조선인이 피해를 입는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조선인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홍사익이 반민족 인물에 이름을 올린 것은 당연하다"며 "하지만, 나라 잃은 백성을 연민의 눈으로 정리해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들어진 입체적인 인물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 독자들에게 열린 시각을 보여주고 싶은 그의 의지다.

◇'목화꽃과 그 일본인'= 김충식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284쪽/ 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