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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거부하고 싫어할 자유를 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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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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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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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났습니다] ‘사랑의 조건을 묻다’의 저자 터울…"신부에게 커밍아웃 후 수도자에 도전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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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로 사는 삶에 대한 에세이 '사랑의 조건을 묻다'를 낸 저자 터울과 그의 연인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 터울은 "게이로서 생애사가 상상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터울
"동성애자(게이)는 남자를 보면 발기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성애적이지만 않으면 괜찮다? 이거 모순이에요. 싫으면 맘껏 싫어하세요. 그리고 한 번만 생각해보세요. 왜 이렇게까지 싫을까?"

남성들이 서로의 벗은 몸을 보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치부되는 일상이다. 이런 남성 중심적 집단주의 사회에서 남자임에도 평생 자신의 신체 일부를 불편해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남들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평생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 게이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낸 책이 한 권 나왔다.

지난 2일 서울 마포구의 한 바에서 신간 ‘사랑의 조건을 묻다’의 저자 터울(필명)을 만났다. 30대 초반의 대학원생인 그는 게이 인권단체 ‘친구사이’에서 소식지를 만들면서 기고했던 글을 묶어 최근 책으로 냈다. '찜방', '어플' 만남 등 자신이 경험한 게이 문화도 솔직하게 적었다.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덤덤하게 고백한다. "자신이 동성에게 끌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그것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행운아는 아마 몇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사람들 눈이 무서웠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했으며, 어떻게든 고쳐 보고 싶다는 무용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게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괴로워 성 정체성을 아예 잊으려고 천주교 수도자가 되려는 시도도 했다. 수사 신부에게 커밍아웃을 한 후 수도원에 들어갔다. 입소 첫날, 사우나에 들어가면서 그는 동료 수도자들이 '성적 대상화'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그렇게 1년을 살았지만, 그는 최종 입회 거부 통보를 받았다. 그는 "게이라는 정체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외면하고 내버려 두기로 결정한 순간 신에 대한 마음이 흐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용기를 내지 못해 늦게 시작한 성생활은 인터넷으로, 어플로, 찜방으로 옮겨가며 수위가 점차 높아져 갔다. 찜방에서 여러 알몸의 남성이 자신의 나체를 만지는 경험, 사람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섹스를 하는 경험은 비윤리적으로 느껴졌지만 동시에 아득한 쾌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 나잇'을 시작한 지 10년째였다. 그제야 연애도 가능해졌고 마음의 안정도 찾았다. 그는 "한참을 욕망에 허우적거리고 나서야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윤리의 기준이 찾아지더라"고 고백했다. 그렇게 '친구사이'에도 가입하고, 자신의 삶을 넘어선 게이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희에게 거부하고 싫어할 자유를 허하노라"
미국에서는 지난 6월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세계적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여론의 동성애에 대한 관용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터울은 이렇게 동성애에 우호적인 여론이 동성애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한다는 의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었다.

퀴어 퍼레이드, 서울시민인권헌장 통과 요구 시위 등을 나가 보면 동성애 반대 단체들이 차마 제정신으로는 볼 수 없는 문구들을 적은 피켓을 들고 반대 시위를 한다. 터울은 "바로 옆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욕설을 듣다 보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게이들도 많다"며 "그런 기억을 이야기할 때면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 괜찮다'고 말하는 이성애자들은 당장은 적대적이지 않으니까 반갑지만, 그들은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싫음도, 낯섦도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기 때문에 교양으로 누르기보다는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나의 싫음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소수자의 삶을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초대'가 시작되는 거죠."

게이인 그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게이로서 생애사가 상상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결혼, 직장, 자녀, 노후…. 이성애자들은 앞으로의 인생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지만 게이들은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거든요.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사랑의 조건을 묻다= 터울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224쪽/1만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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