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세]올드보이 오대수가 부럽다! 내공의 군만두

여의도 신동양반점의 군만두

중국집의 진정한 실력을 알려면 군만두를 맛보면 되던 때가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대량 생산이 가능한 냉동만두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중국집들이 만두를 직접 빚었다. 군만두는 예전부터 중국집 최고 인기 메뉴 중 하나였다. 어느 중국집을 가더라도 직원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둘러 앉아 손으로 만두를 빚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군만두 맛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군만두의 맛은 그 집 주방장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어떤 중국집을 방문하더라도 만두만 맛보면 내공이 파악됐다. 잘 만든 군만두는 재료가 조화를 이루면서 육즙이 풍부하다. 다양한 야채와 좋은 고기 등 품질 뛰어난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짭짤함과 생강, 부추, 돼지고기 등에서 나는 가벼운 중국향은 만두 맛을 끌어올린다.

명동 일품향의 군만두

그러다 공장에서 만든 냉동만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속하게 바뀌었다. 만두 맛을 잘 내지 못하거나 만두를 빚기 번거롭던 중국집들은 더 이상 직접 만두를 만들지 않게 됐다. 대량으로 만두를 구매해 튀겨 내면 그만 이었다. 이제 동네에서 장사하는 대부분 중국집들은 더 이상 만두를 만들지 않는다.


귀한 요리로 대접 받던 군만두가 서비스로 나오기 시작한 시점도 냉동만두가 나오면서다. 이때부터 귀한 요리이던 군만두가 맛이 없는 그저 그런 서비스 음식으로 취급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부푼 마음을 안고 군만두를 주문했다 '냉동만두'가 튀겨져 나와 '멘붕'이 된 이후 동네 중국집에서 단 한번도 군만두를 주문하지 않았다. 동네 중국집들도 군만두 주문이 줄어들자, 요리를 시키거나 짜장면이나 짬뽕을 몇 그릇 이상 시키면 주는 서비스 메뉴로 군만두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두를 직접 빚는 중국집들은 절대 군만두를 서비스 메뉴로 내지 않는다. 그만큼 맛있는 군만두 맛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 장성향의 군만두.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인 오대수가 영화 속에서 15년간 먹던 군만두로 유명하다.

냉동만두가 대세로 자리 잡은 지금이지만 번거롭게 일일이 만두를 직접 빚어 찌고 튀겨 내는 집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여전히 만두를 빚는 중국집들은 가히 맛집이라 부를 기본 조건을 충족하는 셈이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군만두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군만두를 직접 만들어 내는 집이라 하더라도 맛은 천차만별이다.

만두를 너무 좋아해 삼시세끼 모두를 만두만 먹으라고 해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큼직한 찐만두를 앉은 자리에서 40개나 집어 먹는 대식가 이기도 했다.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서 15년 간 갇혀 군만두만 먹고 살던 주인공(오대수)이 부럽다는 생각을 잠깐 했을 정도다.

지금껏 방문해본 중국집들 중에서 인정하는 군만두 맛집이 몇 군데 있다. 한 번 인정 받은 집들은 오로지 군만두를 맛보기 위해 지금도 자주 방문한다.

명동 일품향, 을지로 오구반점, 여의도 신동양반점이 내가 좋아하는 대표 군만두 맛집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먹던 부산역 앞 장성향도 사랑하는 군만두 맛집이다. 부산에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린다. 바닷가에서 나는 산해진미 보다 군만두가 나에겐 우선인 셈이다.

이들 가게에서 군만두를 시키면 큼직한 먹음직스런 만두가 나온다.(오구반점의 군만두는 다른 집들에 비해 약간 크기가 작은 편이다) 만두소에서 나는 약간의 중국향도 조화로운 맛을 이루는 일등 공신이다. 군만두를 시킬 때 고량주나 소주 등 주류는 빠지지 않는다. 술 한잔과 함께 곁들이는 군만두는 사랑 그 자체다.

최근 가서 맛본 장성향의 간짜장. 부산은 계란후라이를 얹어준다.

군만두를 잘하는 집들은 기본적으로 탕수육 등 다른 요리들도 잘한다. 짜장면도 과하게 달지 않아 단 음식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미적 기준을 대부분 충족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맛있는 군만두를 맛보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주변에 혹시라도 군만두를 잘하는 중국집이 있다면 언제라도 추천해 주면 고맙겠다. 어디든 한걸음에 달려가 꼭 맛을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