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직구 같은 삶 살겠다는 선동열 “지난해 국정감사 출석 가장 후회”

머니투데이
  • 김고금평 기자
  • 2019.10.23 04:37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글자크기조절
  • 댓글···

[인터뷰] ‘야구는 선동열’ 낸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형·선배·감독의 한 마디, 인생의 격언으로 삼아

image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 낸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 /사진=이동훈 기자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국보’로 통하는 그가 처음 야구에 손을 댄 건 초등학교 6년 때. 친형이 백혈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캐치볼 하며 놀던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재미를 들일수록 형의 삶도 점점 줄어들었다. 죽음을 앞두고 형이 남긴 한 마디는 선수 생활 내내 격언이 됐다. “이왕 나 대신 시작했으니, 최고가 돼야 한다”

1980년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투수상, 1985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이후 91년까지 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0점대 평균자책점 3번 기록) 등 기록에 기록을 거듭한 선동열(56) 전 야구대표팀 감독 얘기다.

형의 유언처럼 그는 ‘최고’가 됐고 ‘국보’급 투수로 기억되는 중이다. 지난 48년 야구 인생을 오롯이 담아 22일 내놓은 책 ‘야구는 선동열’은 그런 역사에서 설득력 있는 자부심으로 비쳤다.

그는 이날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출판 간담회에서 “나는 국보가 아니다”는 ‘해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96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에 진출한 첫해 처절한 실패와 좌절을 맛봤어요. 2군도 아닌 3군에서 쓴맛을 봤으니 감히 ‘국보’라는 말이 저 자신에게 부끄럽더라고요. ‘나란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구나’ 뼈 저리게 느꼈고 팬들의 손가락질에도 부끄럽게 해서 안 된다는 마음으로 운동했어요.”

그때 주니치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던진 말도 기억 한 켠에 머물러있다. “너는 등 뒤에 태극기를 짊어지고 하는 것 같다. 너 자신을 위해 편하게 하면 더 잘해내지 않을까.”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 /사진=이동훈 기자<br />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 /사진=이동훈 기자
투수 전성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은 86년 5월 삼성과의 경기를 꼽았다. 당시 7회 말 2아웃까지 퍼펙트게임을 한 상황에서 2스트라이크 3볼 후 파올 볼만 3개, 마지막 10구째 안타를 맞았다. 선 전 감독은 “그때 허탈감을 잊을 수 없다”며 “만약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유인구를 던졌을 것”이라고 웃었다.

후회 중 가장 큰 후회가 무엇이냐는 물음엔 “지난해 국정감사 출석”을 꼽았다. 그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 선발 문제로 비판을 받고 국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때 가장 후회스러웠어요. 제가 그 자리에 꼭 서야 하는지 참 괴로웠어요. 하지만 선수나 감독으로서 행복한 기억도 많아요. 제가 생각한 대로 야구가 풀릴 때 그 순간적 즐거움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쾌감을 안겨줘요.”

선 전 감독은 간담회 내내 성공보다 ‘부끄러움’ ‘실패’ ‘부족’ 같은 단어를 자주 올렸다. 최고의 자리는 자신에 대한 성찰로 얻어 낸 훈장이라는 설명처럼 들렸다.
국내 최고 투수로 기억된 최동원과 선동열의 대결을 다룬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드러난 캐릭터와 달리, 그는 최동원을 우상으로 치켜세우며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동원 형은 제 우상이었어요. 그가 볼을 던질 때마다 전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으니까요. 맞대결 자체가 사실 꿈만 같은 일이죠. 아직도 잊히지 않는 형의 말 중 하나가 ‘투수는 육상선수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던지는 것뿐 아니라 달리기, 스텝 등 기본기에 충실하라는 얘기죠.”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류현진 같은 투수를 만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도 기술적 충고들은 많은데, 러닝이나 웨이트트레이닝 등 기본기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야구감독이 2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 출간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br />
선동열 전 국가대표 야구감독이 2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 출간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책은 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압력 등으로 두 차례나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된 과정, 고 심재원·임호균·장효조 등 선배들과의 일화, 한국 야구 개혁론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선 전 감독은 자신 인생의 3분의 2를 선수와 감독으로 살았다며 나머지 3분의 1은 야구 발전과 팬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 시작이 내년 2월 미국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메이저리그의 선진 시스템을 배우는 것이다.

전성기 시절, 그의 강력한 구질은 슬라이더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구는 ‘직구’라고 말했다.

“전 야구인으로서 이런 삶을 사랑해요. 원칙적인 삶, 꾀부리지 않는 삶, 왜곡하지 않는 삶이죠. 그런 기본적인 삶을 살아갈 마지막 날까지 유지하고 싶어요. 전 초구도 직구였고 마지막 승부구도 직구일 겁니다.”



오늘의 꿀팁

  • 날씨
  • 내일 뭐입지

많이 본 뉴스

2019 모바일 컨퍼런스
제 15회 경제신춘문예 공모
블록체인

포토 /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