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가족 출신 이사님들, 왜 사라지나 봤더니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총수와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가 이사로 등재하지 않는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 등기이사에게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손해배상 등 각종 법적 책임이 따르는데, 이런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이사 등재를 꺼리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총수 일가가 실질적으로 경영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발표한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49개 공시대상기업집단(계열사 총 1801개사) 중 총수일가가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17.8%(321개사)였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7.4%(133개사)다.


작년과 올해 연속 분석 대상인 47개 집단을 보면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비율은 작년 21.7%에서 올해 17.9%로 3.8%포인트 낮아졌다. 최근 5년(2015~2019년) 연속 분석대상 21개 집단을 보면 2015년 18.4%, 2016년 17.8%, 2017년 17.3%, 2018년 15.8%, 2019년 14.3%를 으로 지속 하락했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2015년 5.4%, 2016년 5.2%, 2017년 5.1%로 줄다가 2018년 일시적으로 증가(5.4%)했지만 올해 다시 4.7%로 낮아졌다.

총수가 어떤 계열사에도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집단은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등 19개로 작년(14개)보다 5개 늘었다. 총수일가 누구도 이사로 등재하지 않은 집단은 한화, 미래에셋, DB, 삼천리 등 4곳이었다.

등기이사는 상법상 손해배상 책임, 자본충실의 책임 등이 부여된다. 일례로 이사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법령·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입히면 배상할 책임이 있다.


공정위는 총수일가가 실제로 경영활동에 참여하면서도 이사로 등재하지 않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책임경영'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례로 김승연 한화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어떤 계열사에도 이사로 등재하지 않아 '지배력 행사와 책임 간 괴리'가 생긴다는 의미다.

정창욱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19개 집단 중 10개는 총수 2·3세 이사 등재 회사도 없어 책임경영 차원에서 한계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총수 일가는 주력회사(자산규모 2조원 이상 상장회사), 지주회사,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 사익편취 규제 사각지대 회사에는 이사로 집중 등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회사에서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41.7%(120개사 중 50개사)로, 기타 회사의 이사 등재 회사 비율(16.1%), 전체 회사 비율(17.8%) 보다 크게 높았다. 공정위는 총수일가가 직접 성과를 내거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등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 적극적으로 이사로 등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상장사에서 사외이사 비중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 변화도 일부 감지됐다. 56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250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810명으로, 전체 이사의 51.3%를 차지했다. 250개 상장회사가 관련 법(상법,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따라 선임해야 하는 사외이사는 725명인데, 이보다 85명을 초과한 것이다.

이사회는 여전히 총수 등 대주주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99.64%), 이사회 내 위원회(99.41%)에 상정된 안건은 대부분 원안 가결되고 있으며, 특히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했다.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지침 행사 강화) 도입 이후 국내 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는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연속 분석 대상 54개 집단에서 국내 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비율은 작년 77.9%에서 올해 78.7%로 늘었다. 경영진 견제 역할을 수행하는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사외이사 선임 등에서 기관투자자의 반대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