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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엄마가 기억하는 유일한 단어 ‘작가’…“그래서 더 열심히 소설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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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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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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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작가

머니투데이 주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자 천선란 작가. 천 작가는 '천 개의 파랑'이라는 작품에서 경주마와 로봇기수의 관계를 밀도있게 그렸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우아하고 환상적인'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사진=이동훈 기자
머니투데이 주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자 천선란 작가. 천 작가는 '천 개의 파랑'이라는 작품에서 경주마와 로봇기수의 관계를 밀도있게 그렸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우아하고 환상적인'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사진=이동훈 기자
어릴 때부터 쓰는 걸 좋아했다. 인터넷 소설이 유행이던 초등학교 시절엔 반 친구들 이름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그의 꿈은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소설은 결국 타인의 몸과 이름을 빌려 작가 자신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꿈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국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는 SF에 눈 떴다. 세기 말이나 좀비 소재에 한창 재미가 들릴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간 뒤 원인불명의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이다.

“엄마가 쓰러지던 날, 병원에 가서도 '이 모든 게 일주일이면 다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수술을 했고, '어제처럼 돌아올 거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합병증이 생겼고 아이처럼 변한 뒤 기억도 잃었죠.”

천선란 작가. /사진=이동훈 기자
천선란 작가. /사진=이동훈 기자
이후 그의 삶도 변했다. 대학원에 진학할까, 취업할까 갈림길에서 소설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갔다. 통원 치료를 위해 지난 몇 년 간 4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엄마 곁을 지켰다. 혹시 기억이 되돌아올까 “엄마 이름 뭐야?” 물어도 기대하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취업을 결심하고 평소처럼 스무고개 질문을 던졌다. “엄마, 내가 누구지?” 엄마가 처음으로 입을 열고 말했다. “작가”

머니투데이 주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분 대상작 ‘천 개의 파랑’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토록 원하던 소설가의 꿈을 포기할 때, 치매 엄마가 건넨 애틋한 선물이었을까.

천선란(27) 작가는 지난 13일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작가를 포기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간직한 유일한 기억이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기억을 현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다시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시상식에 참석한 언니가 수상소감을 듣고 눈물을 연신 쏟아냈고, 작가도 “언니, 울지마” 하며 애써 눈물을 감춰야 했다.

작품은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와 로봇 기수의 삶과 관계를 다뤘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우아하고 환상적인’ 작품이란 평가가 이어졌다.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자 천선란 작가. 그는 "치매 엄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작가'라는 단어란 말에 취업을 포기하고 작가의 꿈을 다시 꿨다"고 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자 천선란 작가. 그는 "치매 엄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작가'라는 단어란 말에 취업을 포기하고 작가의 꿈을 다시 꿨다"고 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작품의 골격은 부모의 영향이 컸다. 엄마는 “내가 너를 낳았으니까” 대신 “우리가 만났으니 잘 지내야 한다”는 말로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관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휴머노이드와 기계처럼 소비되는 말의 감정에서, 로봇과 인간 사이의 교류에서 애잔하게 이어진다.

중동에서 건축 일을 하는 아버지에게서 작가는 ‘미지의 세계’를 꿈꿨다. “사막의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있다”는 아버지의 각종 스토리를 작가는 이미지화했고 이를 작품에 오롯이 녹여냈다.

작품은 ‘속도’와 ‘호흡’이라는 두 가지 큰 화두를 던진다. 기술 발달과 함께 던져진 속도는 경주마를 상징적으로 내세워 속도 뒤에 감춰진 ‘기술의 허점’을 드러낸다.

“부평에 살면서 GM자동차 직원들이 10년 가까이 농성하는 장면을 봐 왔어요. 속도를 중요시하는 자동차를 만들면서 기술도 기계도 발전했을 텐데, 그 바깥에 생존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보며 ‘누구를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는가’하는 의문이 적지 않았거든요.”

휴머노이드 콜리가 말과 인간과의 대화에서 ‘호흡’을 중시하는 것 역시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은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장치다. 작가는 “우리는 대화를 하지만, 어떤 호흡으로 대화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많은 교감을 주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소통’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교할 적대적 관계가 생길 때 소통의 문제를 곱씹어볼 수 있으니까요.”

휴머노이드를 통해 다시 인간의 소통을 얘기해보고 싶었다는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은 천선란 작가. /사진=이동훈 기자<br />
휴머노이드를 통해 다시 인간의 소통을 얘기해보고 싶었다는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은 천선란 작가. /사진=이동훈 기자

휴머노이드에 ‘인간성’을 부여한 배경에는 인간이 인간적이지 못한 역설이 작용했다. 지구를 망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서로 미워하는 인간은 그럼에도 ‘더불어’ 산다. 그 역설의 희미한 교집합에서 나오는 작은 ‘온기’을 부여받은 휴머노이드에서 다시 인간을 들여다보는 셈이다. 작품은 그렇게 감각된다.

작가는 엄마의 병을 계기로 언니와 수년 간 싸우기도 했다. 이해할 것 같았던 혈육도 실은 소통의 부재 속에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 시간이었다. “그런 것 같아요. 결국 인간은 ‘희망’ 하나 품거나 다른 ‘인간’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에요.”

천선란이라는 작가명이 엄마, 아빠, 언니의 이름 하나씩 조합한 필명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의 소통 방식이 느닷없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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