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시장에 미·러 신냉전…배럴당 30달러 추락 우려도

코로나19에 따른 원유시장 침체에 대응하고자 OPEC+(OPEC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 연합체)가 추가 감산을 놓고 5일(현지시간) 논의했으나 합의에 실패하면서 유가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심지어 러시아는 다음 달부터 증산을 시사하면서 전문가들은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봤다. 러시아와 미국 간 원유시장 경쟁과 러시아와 OPEC 수장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에 전문가들은 집중하고 있다.
유가 하락, 이제 시작?

러시아 석유 시추선/사진=로이터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5일 OPEC+ 회의에서 “오늘 (합의 무산)결정으로 4월 1일부터 OPEC, 비OPEC 국가들은 감산 요구를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측은 이달까지 시행하기로 한 감산을 연장하는 데도 동의하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실상 다음 달부터 언제든 증산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합의 불발로 국제유가는 폭락했다. 6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10.1% 급락한 41.2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6년 8월 이후 최저치다. 브렌트유도 런던 ICE 선물거래소 5월물 가격이 9.44% 내린 45.27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글로벌 원유 수요가 계속 감소할 거란 전망 속에서 산유국들이 이번 달까지 감산하기로 한 하루 210만 배럴이 다음 달부터 시장에 풀리면 유가는 더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존 킬더프 석유헤지펀드 어게인캐피털 애널리스트는 "최소 100만 배럴의 추가 감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WTI 가격은 배럴당 3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빈센트 볼라 버투파이낸셜 창립자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35달러 선이란 시험대에 다시 오르게 됐다"고 했다.
러시아의 미국 경계

미국 텍사스 셰일가스 시추 현장/사진=로이터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러시아가 추가 감산에 동의하지 않은 건 OPEC+의 감산으로 미국 석유회사들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빈 합의에 참석했던 관계자들은 FT에 ”러시아는 경쟁국인 미국의 셰일산업과 미국 경제에 타격을 가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EU가 추진하고 있는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 ‘노르드스트림2’을 미국이 제재하면서 러시아가 ‘보복’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협상에 정통한 한 인사는 "러시아 측은 회의 내내 '기다리면서 두고 보자‘, ’가격은 이미 내릴 만큼 내렸다‘고 했다“면서 ”러시아가 미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게 명백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가 급락이 미국 석유산업에도 큰 타격을 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이슨 보도프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정책센터장은 "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이 생산량을 유지하는 데 있어 자본적 제약에 시달리는 상황인데, 가격 전쟁까지 일어나면 파산 위기에 처한 미국 석유회사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 경쟁 신호탄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과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사진=로이터

FT 자료에 따르면 7일 사우디는 아시아, 미국, 유럽에 대한 공식 유가를 자체적으로 배럴당 8달러 인하하면서 ’유가 경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번 사우디의 공식 유가 인하 폭은 역사상 가장 크다.

한 OPEC 회원국 협상관계자는 "합의가 안 되면 사우디는 고객이 요구하는 만큼 생산해낼 것“이라며 각국이 시장점유율을 위해 가격 경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제이미 웹스터 BCG에너지분석 책임자는 "화약 냄새만 안날 뿐 현재 산유국들이 취한 태도에서 가격 전쟁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러시아는 저유가를 기반으로 예산을 편성했다는 분석도 나오는 만큼 유가 하락에 덜 민감하다는 전문가 설명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가가 현재 51달러 밑으로 내려간 상황이지만 지난 2년간 쓰다남은 예산이 있어 유가가 40달러 선에 접근하더라도 러시아는 정부지출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우디 정부가 수지균형을 맞추려면 유가가 최소 배럴당 92달러로 유지돼야 한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