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7개월 방치 살해 사건'에 숨겨진 사연

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검사가 항소를 했다 하더라도 오늘 저희가 선고한 형과 동일한 형이 선고됐을 것입니다."

생후 7개월 된 딸을 홀로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부부의 항소심 선고 공판.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이들에게 1심보다 절반이 감형된 형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남편 A씨에게 징역 10년을, 아내 B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해당 발언은 검사가 항소하지 않아 피고인들이 감형받았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해 나온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의 감형엔 실제로 다른 이유들이 존재했다. 1심과 판단을 달리하거나, 1심에선 고려하지 않았던 것 중 새롭게 양형 사유로 꼽힌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 맞냐" 부부 갈등의 원인된 '친자 여부'

남편 A씨./사진=뉴스1

판결문에 따르면 남편 A씨와 아내 B씨의 만남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2017년 9월쯤부터 이성 교제를 시작했는데 2018년 1월 A씨가 약 한 달간 소년원에 입소하게 됐다. 그 사이 B씨는 다른 사람과 교제를 했고, A씨가 출소한 이후 다시 A씨와 교제를 시작했다.

그런데 2018년 5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B씨가 임신 4개월 차라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이에 A씨는 임신한 태아가 자신의 친자가 맞는지 의혹을 가졌다. 하지만 A씨는 이내 친자 여부를 불문하고 B씨와 함께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했고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다. 부부가 되기도, 부모가 되기도 어린 나이였다.

어린 부모는 이 선택을 결국 책임지지 못했다. 함께 사는 내내 갈등의 씨앗이 됐다. A씨는 아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고 계속 의심하면서 아이에 대한 보호 및 부양 의무를 B씨에게 떠넘겼다. 이런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난 B씨도 부양 의무를 A씨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결국 애완견이 있는 집 안에 아이를 방치하고 둘다 귀가하지 않는 상황까지 가게 됐다.

2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한 감형 사유로 부부의 결합과정에서 A씨가 보였던 태도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A씨는 어린 나이에 피고인 B씨가 임신을 하자 본인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맡아 키우기로 다짐했다"며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기에도 벅찬 나이에 B씨와 함께 살며 피해자를 양육했다"고 설명했다.

1심 판결에선 양형 판단에 고려되지 않았던 사안이다.


잔혹 범행 인정한 1심, "흉기로 수십차례 찌른 범행과 달라" 선 그은 2심

아내 B씨./사진=뉴스1

1심과 판단이 완전히 달라진 부분도 있다. 6일간 아이를 홀로 방치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이들의 범행이 '잔혹한 범행수법'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다.

법원은 형량을 정함에 있어 범행의 수법이 매우 잔혹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특별 양형인자'로 삼아 형을 더 높인다. 1심은 이들의 범행이 잔혹한 범행수법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를 가중 요소로 삼았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양형기준에서 살인죄의 양형 가중 요소로 고려하는 잔혹한 범행수법은 고통의 강도와 시간적 계속성 등 측면에서 볼 때 통상의 정도를 넘어서는 극심한 육체·정신적 고통을 가해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라며 "방화로 살해한 경우, 폭발물을 이용한 경우, 살해 전 피해자의 신체 일부분을 고의로 손상한 경우, 흉기를 이용해 수차례 찌른 경우 등이 해당한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 살인 범행과 같이 피해자가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해 사망에 이른 경우를 위에서 설명한 경우들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사건 범행은 잔혹한 범행수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중형 필요성 1심도 2심도 인정…"진지한 반성 있는지 매우 의문"

1심과 2심 사이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1·2심 재판부는 공통적으로 "A씨와 B씨가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A씨와 B씨는 법정에서 줄곧 '아기가 정말 숨질 줄은 몰랐다'는 식으로 주장했지만, 1·2심 재판부는 모두 이 부부가 충분히 아기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보고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냉장고를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집에 들어간 뒤 냉장고 사진을 찍고 배가 고파 토마토를 썰어 먹으면서도 피해자를 살펴보지 않았다"며 "결국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자라나야 마땅했던 피해자는 부모로부터 방치된 결과 3일 넘게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굶다 사망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느꼈을 육체·정신적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도 "피고인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된 것은 피고인들의 만남과 결합이라는 피고인들 결정에 따른 것"이라며 "부모 품에서 벗어나 힘겹게 피해자를 키우게 되면서 갈등이 커지고 서로에게 크게 실망해 결국 이 사건 범행에까지 이르렀지만,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힘없고 연약하며 아무런 죄가 없는 피해자에게 돌리고 말았다"고 질책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25일 오전 7시부터 31일까지 6일간 인천시 부평구 한 아파트 자택에서 생후 7개월인 C양을 혼자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기간 동안 부부는 술을 마시러 다니는 등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발견 당시 C양은 머리와 양손, 양다리에 긁힌 상처가 난 채 거실에 놓인 라면박스 안에서 숨져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징역 20년을, 당시 미성년자였던 B씨에 대해 장기 15년~단기 징역 7년을 선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