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맡기려면 보관료 내라"…'경제 극약처방' 내린 나라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코로나19 봉쇄령을 단계적으로 해제,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전례 없는'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되는 최악의 경기침체를 딛고 회복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펼치는 것이다.

미국 뉴욕 시내에서 한 남성이 걸어가고 있다./사진=AFP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세계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기준 성장률이 4월 마이너스(-) 4.8%에서 5월 -2.3%로 감소세가 둔화됐다고 전했다. 토스텐 슬록 도이체방크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책입안가들이 악몽에서 벗어나 이제 회복세를 바라보고 있다"면서 "유동성 위기가 채무불이행 위기로 바뀌지 않도록 가계와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중앙은행 '극약처방'…마이너스 금리, 채권매입 확대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행된 '양적완화'(QE, 시중 유동성 공급을 위한 국채 등 장기채권 매입)는 이제 '평범한 대책'이 됐다. 기준금리를 아예 마이너스로 내리거나, 시중 채권금리를 일정 수준 안에 가두는 금융시장 기존 질서를 흔드는 정책을 서슴지 않는 것이 요즘 중앙은행들의 위기 대처방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4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코로나19의 경제 충격에 대응해 내놓았던 ‘팬데믹 긴급 매입 프로그램(PEPP)’의 채권 매입 규모를 기존 7500억유로에서 1조3500억유로까지 6000억유로 더 늘리고 매입 시행 기간도 내년 6월까지로 연장했다. PEPP는 기존 양적완화(QE)와 달리, 유로존 회원국의 ECB 출자 비율과 상관 없이 코로나 피해가 큰 회원국에 유동성을 더 공급할 수 있는 구조이다.

ECB는 기존 QE도 계속 진행하고 있어, 5월 말 기준 ECB가 매입한 자산을 모두 합치면 2조9700억유로(4070조원)가 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각종 조치를 취했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AFP

양적완화만으로 모자라…마이너스 금리, 국채금리 관리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QE만으로 모자라 보다 극단적인 수단까지 내놓고 있다. 이미 ECB와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스위스·덴마크 중앙은행 등이 적용중이고 영국 영란은행이 최근 도입을 검토중인 '마이너스 정책금리'가 대표적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려도 돈이 시중에 돌지 않고 은행에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은행이 가진 현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면 이자 대신 보관료를 내라고 요구하는 정책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마이너스 금리 대신 '수익률 곡선 관리(YCC)' 카드를 검토중이다. YCC는 중앙은행이 시중에서 거래되는 특정 국채 금리의 상하한선을 설정해 두고 채권을 사고 팔아 인위적으로 금리를 목표 수준에서 유지하는 정책을 말한다.

위기를 맞아 정부와 중앙은행이 지나치게 국채를 찍고 거래하다 보니, 시장 금리의 기초가 되는 국채금리가 제멋대로 움직여 아예 시장 수요공급으로 움직이던 국채금리를 관리하는 데까지 이른 셈이다. 일본은행은 2016년부터 시행했고 호주중앙은행도 올해 3월에 도입했다.

5월 22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BOJ) 앞으로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사진=AFP

日 역대급 국채, 中 620조원 인프라, 韓 '한국판 뉴딜' 일본 정부는 올해 90조엔(약 995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신규 국채를 발행한다. 또 일본은행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가 이자와 담보 부담 없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지난달 22일 도입했다. 중소기업에 융자하는 금융기관에 업체당 1000억엔을 상한으로 무이자 자금을 빌려주며, 일본은행은 이를 통해 최대 총 30조엔의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다.

중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3조6000억위안(약 620조원) 규모의 재원을 추가로 확보해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인프라 투자 등을 강화해 과감한 경기부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도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한국판 뉴딜'에 앞으로 5년간 76조원을 쏟아붓는다고 밝혔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사진=AP·뉴시스

美 연준 "연말까지 팽창적 통화정책 유지 기대"미 연준은 국채 및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매입 규모를 무한대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 '프라이머리마켓 기업 신용 기구'(PMCCF)와 '세컨더리마켓 기업 신용 기구'(SMCCF)도 도입했다. PMCCF는 기업들의 신규 채권 발행이나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기구다. SMCCF는 유통 시장의 회사채에 대한 유동성 지원 창구다. 기업에 대한 대출 등과 함께 회사채 매입 등을 수행한다.

최근 연준은 중소기업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메인스트리트 비즈니스 대출 프로그램'도 발표했다. 오는 9~10일(현지시간)에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예정돼 있다. 블룸버그는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는 추가 대책을 내놓지 않겠지만, 연말까지 느슨한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장기차입금리를 통제하기 위해 일본은행 방식을 따라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본격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일자리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일자리 창출은 경제회복세를 굳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직원 재교육, 나이든 직원 고용 유지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전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청년층 노동자 6명 중 1명 이상이 실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이뱅크(Maybank)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추아학빈은 "고용시장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 경제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스트레스 확대로 인한 위험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