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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으로 임신까지 당했다면…가해자 '상해죄 처벌' 과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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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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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여성 생리적 기능 정상적 발현…임신 자체 상해 아냐" 법조계 "상해로 볼 여지 있어" vs "처벌 범위 확대 신중해야"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News1 DB
© News1 DB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임신은 종종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원하지 않은 임신의 경우는 '축복'이 아닌 '재앙'이다. 가장 대표적이고 극단적인 케이스가 바로 강간에 의한 임신이다.

임신은 여성의 몸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신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큰 변화를 수반한다. 원하지 않은, 그것도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는 신체적 변화는 물론 정신적 고통도 가져온다.

그렇다면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상해(傷害)로 평가할 수 있을까. 일반 강간죄의 경우는 형량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지만, 강간 등 상해·치상의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지난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강간 피해자가 임신한 경우 가해자를 강간치상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에 관한 판례 2건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법조계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의붓딸을 강간한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는 10대 초반이었는데 임신을 하게 됐다. 검찰은 의붓아버지를 강간등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강간치상 혐의를 무죄로 판단, 13세 미만 미성년 강간과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죄만 유죄로 인정했다. 임신을 상해로 보지 않은 것이다. 임신 사실은 양형에서 특별가중인자로만 적용했다.

1심은 "성관계는 그 자체로 임신 가능성을 당연히 내포하고 있다"며 "성관계를 통해 임신을 했다면 그것이 강간 범행으로 인한 원하지 않은 임신이었더라도 오히려 여성의 생리적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현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됐다거나 생활 기능에 장애가 초래됐다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나 임신중절수술을 받으면서 수술에 수반되는 상처를 입는 경우 등을 강간 범행으로 인한 상해로 평가할 여지가 있으므로, 원하지 않은 임신 그 자체를 상해로 볼 필요성이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원하지 않은 임신을 상해로 볼 경우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도 원하지 않은 임신이 생긴 경우에도 상해죄나 과실치상죄로 처벌해야 하는지 등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을 하면서 "임신이 필연적으로 임산부의 건강상태를 나쁘게 변경시키고, 생활기능에 대한 장애를 초래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형벌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 불리하게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대법원도 1,2심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강간 피해자가 임신을 하게 된 경우 가중처벌을 하는 법률을 새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20대 여성을 강간, 임신을 하게 해 강간치상으로 기소된 피고인도 1,2심에서 앞선 사건과 같은 취지로 판단했고, 대법원도 지난해 5월 1,2심대로 판결을 확정했다. 정리하면 법원은 일관되게 '강간으로 인한 임신=상해'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법조계에서는 강간에 의한 임신을 상해로 볼지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상해로 볼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상해 혐의를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는 데에서는 조심스러웠다.

대법원 젠더법연구회(회장 신숙희)는 지난 5월 경기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젠더와 법, 그리고 법원'을 주제로 한 법관연수에서 해당 주제를 갖고 발표를 했다.

발표를 맡은 강경미 수원지법 판사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을 생리적 기능의 정상적 발현이라고 보는 것은 강간행위와 그로 인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로서의 임신이라는 의미를 주목하지 못하고, 임신 현상 자체에 중점을 두고 상해 여부를 고찰한 것으로서 성관계는 그 자체로 임신의 가능성을 당연히 내포한다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판례가 기본적으로 생리적 기능 훼손설의 태도를 보이면서 다양한 판단기준을 통해 상해 결과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반영해 범죄의 죄질적 측면, 비난가능성, 처벌 필요성 여하에 따라 판단해 온 것에 비춰보면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도 상해로 포섭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임신을 유지하기보다 임신중절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임신중절 단계에서 발생하는 상처만을 두고 상해 여부를 검토하게 되면 피해자의 결정과 제3자(의사)의 행위가 개입됨으로써 오히려 가해자는 처벌을 면하게 되고, 임신중절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상흔은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임신 중절 여부와 상관 없이 임산 자체 단계에서 상해로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 상해에 해당하는지 의견이 일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간상해로 처벌을 할 경우 죄형법정주의와 형벌 법규의 유추해석금지 원칙에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강간으로 임신을 시킨 경우 중상해에 상응하는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쉽지 않은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성범죄든 다른 부패범죄든 처벌의 범위를 넓히는 데는 신중해야 하는 건 맞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아이를 임신하는 건 성스러운 일인데 이걸 어떻게 상해로 볼 수 있냐'는 게 보수적 시각"이라며 "강간 임신을 상해로 포섭해야 하는 데 모두 동의를 할 테지만, 아이가 생긴 걸 상해라고 보는 게 우리 윤리 감정에 반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생리적 기능훼손이 상해라면 임신을 상해라 보기 어렵다"며 "아마 검찰이 공소사실에 극도의 스트레스 또는 정신과적 질환을 상해라고 기재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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