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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방[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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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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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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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뉴시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뉴시스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21층엔 그룹 회장실이 있다. 넓은 21층 공간의 거의 절반이 회장실이다. 회장실 바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방이 나온다. 딸린 부속실 등을 합하면 작은 회사 하나 정도는 입주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된다.

사풍대로 특별한 인테리어랄것도 없이 담백하고 소박하다. 넓다고 탓할 이유도 없다. 회장실의 규모와 기능은 현대차그룹 위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품질순위(JD파워 신차품질조사 기준) 30위권으로 바닥을 기던 현대차는 이제 없다. 품질과 판매량 면에서 글로벌 톱을 다투는 현대기아차로 우뚝섰다. 회장실은 이 현대기아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경영의 정수다.

회장실 얘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이 회장실이 지난 5년여간 거의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건강문제 등으로 비정기적으로 출근하다가 최근 몇년간은 거의 출근하지 않고 자택에서 업무했다. 그룹을 대신 이끈 정의선 회장은 건재한 부친을 두고 앞서가는 행동을 할 인물이 아니다. 당연히 '아버지의 방'을 비워뒀다.

정 회장은 이달 14일 그룹 회장에 공식 취임했다. 이젠 '합법적으로' 회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주일여가 지난 지금까지 이사 소식은 없다. 아직 수석부회장 시절 사용하던 19층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한 그룹 임원은 "정 회장의 방은 회의실 틈에 있어 처음 가보는 사람은 길을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때로는 형식이 의미를 지배한다. 회장실보다 넓은 사장실이 없고, 사장실보다 넓은 부사장실이 없는건 다 이유가 있다. 멀쩡히 회장이 있는데 회장실이 오래 비어있다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정 회장에게 "얼른 21층으로 올라가라"고 재촉하는 측근들도 있을거다.

그런데 정작 정 회장의 머릿속 우선순위에서 회장실 문제는 저만치 뒤에 있는 듯 하다. 다른 업무에 여념이 없다.

미래 모빌리티로의 대전환은 누가 시점을 정해주는게 아니다. 앞서가는 기업이 시점을 정한다. 뒤처지는 기업은 사라진다. 그래서 정 회장의 행보에는 좌고우면의 여유가 없다. 회장 취임 전날엔 싱가포르에 그룹 첫 해외 혁신 연구센터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의 첫 삽을 뜨고, 회장 취임 다음날엔 대대적인 R&D(연구개발) 인력 채용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지은 대형 수소전기트럭 공장에선 막 유럽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수출도 곧 뒤따른다. 대규모 수소공급망 실증사업엔 계열사들을 총동원했다. 내년엔 현대차그룹 첫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적용된 전기차를 본격 생산한다. 정 회장의 스케줄표를 보면 회장 취임 조차 그저 빠듯하게 소화해야 하는 여러 숙제 중 하나처럼 보인다.

어느 방에서 고민하고 어느 방에서 결정한들 그게 무슨 문제일까. 그럼에도 21층 회장실의 의미는 정 회장에게도, 현대차그룹에게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현대차그룹을 있게 한 정 명예회장의 방이다. 정 회장이 수시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밝힌 '아버지의 방'이다.

정 회장이 바쁜 일정을 마치는대로 아버지의 방을 물려받기를 바란다. 불이 켜진 21층은 현대차그룹에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됐음을 알리는 시그널이 될 것이다. 또 정 회장에게도 한 층 높은 책임감을 느끼고 한 단계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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