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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이재용의 머뭇거림[오동희의 思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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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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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9일 김포공항에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가전전시회(CES) 출장길에 머니투데이 기자와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제공=뉴스1
2013년 1월 9일 김포공항에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가전전시회(CES) 출장길에 머니투데이 기자와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제공=뉴스1
"지리산 천왕봉에 있는 소나무는 자라고 싶어도 자라지 못한다. 항상 첨단에서 가장 강한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살다보니 그렇다."

대선자금 수사와 특검, 국정농단 사건 등 각종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힘들어했던 한 삼성 최고위급 임원이 몇 년 전 식사 자리에서 한탄하며 한 말이다. 그는 현재 수감생활 중이다.

그는 삼성이라는 그룹이 한국 재계를 대표하다보니 어떤 일이든 가장 먼저 해야 하고, 정치권으로부터의 요구도 가장 먼저 많이 받게 되고, 질타나 매도 가장 많이 맞게 된 것을 이렇게 비유했다.

반기업정서로 가득 찬 진영은 '삼성공화국'이라는 딱지를 붙여 여론전을 펼쳤지만, 어찌됐던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기준이 됐다. 이는 삼성이라는 기업과 그 기업의 최고경영진을 옥죄는 감옥이 되기도 했다.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삼성이 기준을 정해 100억원을 하면, 현대자동차그룹이 60억, SK가 50억, LG가 40억원을 하는 식이다. 채용이나 투자도 삼성이 목표를 정하면 다른 그룹이 이를 거울삼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반기업 정책의 타깃도 1번이 삼성이다. 순환출자규제, 일감몰아주기 규제, 삼성생명법 등 모든 규제는 삼성이 시발점이 됐다. 그러다보니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고, 한걸음 내디딜 때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해도 오해하고, 그 뒤에 숨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위축됐다.

수감생활 중 충수염 수술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신의 감형을 위해 '카드'를 쓰고 싶어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든지, '이건희 컬렉션'을 국가에 기부한다든지 하는 입장 표명을 보류했다. 선의를 가진 행동이 다른 목적을 가졌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하는 이 부회장의 스타일 때문이다.

삼성가의 미술품의 상속세 대납문제 논란과 관련해, 삼성가 내부에선 호암미술관이나 리움미술관의 미술품이 한 기업가문의 소장품이 아니라는 인식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2015~2016년경 들었던 얘기로는 이 회장 타계시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가족들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야 어찌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기회가 생기면 바로 실행할 요량이었던 것으로 안다. 재판 등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잠시 머뭇거린 듯하다. 하지만 선한 의지가 중요한 만큼 의도에 대한 타인의 오해나 해석은 무시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번 급성충수염 수술도 마찬가지다. '꾀병'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머뭇거린 것이 오히려 화를 키웠다. 충수가 터지기 전에 미리 수술했으면 3~4일의 입원이면 될 일을 장내 감염으로 대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등 한달 가까이 입원 기간이 늘었다. 지리산 천왕봉의 소나무가 거친 비바람에 쓸려다나디보니 지레 겁먹고 움추려든 경우다.

일부 시민단체는 수감 중인 이 부회장의 직을 박탈하고, 향후 삼성전자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치적 사건에 휘말린 기업인에게는 모진 일이다. 그들은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로 인해 삼성전자가 실기를 했을 때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제3자 훈수꾼에 불과하다.

2016년말쯤으로 기억한다. 이건희 회장의 입원이 장기화되면서 당시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은 이 부회장에게 '회장'직에 오를 것을 건의했다. 삼성이라는 거함의 리더부재로 인한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회장님이 병상에 누워 계신데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다"며 거부했었다. 인륜으로야 옳은 얘기일 수 있으나, 기업가 가문의 후계자로서는 머뭇거리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이젠 그가 영어의 몸이든 아니든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춥고 거친 '천왕봉에서의 시간'은 '낮은 땅 위'보다 더 빨리 가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슬픈 이유다. 이재용에게는 지체할 시간이 많지 않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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