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운임 담합한 23개 해운사…과징금 8000억→962억 '뚝', 왜?

국내외 23개 해운사가 15년 동안 우리나라와 동남아를 오가는 항로의 운임을 담합한 것과 관련,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초 공정위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에서 제시한 과징금 액수인 약 8000억원보다 88% 줄어든 수준이다. 일각에선 국회가 해운 담합에 대한 제재를 막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을 추진 중이란 점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18일 이 같은 내용의 해상운임 담합행위를 벌인 12개 국내선사, 11개 국외선사 등 총 23개 선사에 대해 과징금 총 962억31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해운사별로는 △고려해운 296억4500만원 △흥아라인 180억5600만원 △대만 완하이 115억1000만원 △장금상선 86억2300만원 △홍콩 티에스라인(TSL) 39억9600만원 △HMM 36억700만원 △대만 에버그린 33억9900만원 등이다. 운임에 대한 합의와 실행을 독려한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이하 동정협)에는 과징금 1억6500만원이 부과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23개 선사는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541차례 회합 등을 통해 모두 120차례 한-동남아 항로의 컨테이너 화물 운송 운임에 대해 합의하고 실행했다. 한-동남아 항로 운임을 인상 또는 유지할 목적이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합의한 항목은 △기본운임의 최저수준 △부대운임의 신규 도입이나 인상 △대형화주(대량 화물을 맡기는 사업자)에 대한 투찰가격 등이었다.

(부산=뉴스1) 이광호 기자 = 29일 오후 부산신항 다목적부두에서 열린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전략 선포 및 1.6만TEU급 한울호 출항식에서 컨테이너가 한울호에 선적되고 있다.2021.6.29/뉴스1

선사들은 이같은 합의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서로 다른 선사들의 화물은 빼앗지 않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선사들은 기존 거래 화물(화주)을 보호하고, 합의운임을 준수하지 않는 화주에 대해서는 선적을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1개 국내 선사들은 2016년 7월 중립위원회를 설치해 2016년~2018년 기간 중 한-동남아 수출 항로에서 총 7차례 운임감사를 실시하고, 합의를 위반한 선사들에 대해 자체적으로 총 6억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동정협이 23개 선사들의 운임 담합을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합의된 운임을 준수하도록 개입한 것도 드러났다.

공정위는 선사들이 운임 인상 등 합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담합 행위를 은폐했다고 봤다. 대외적으로 선사들은 합의를 통해 운임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개별선사가 자체적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해왔다. 담합을 의심받지 않도록 운임인상 금액은 1000원, 시행일은 2~3일 정도 차이를 두기도 했다.

한편 공정위의 제재 과정에선 해상운임 담합이 해운법상 허용될 수 있다는 점이 쟁점이 됐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해운법 등 다른 법에 근거한 공동행위는 법 적용이 배제된다. 공정위는 "정당한 공동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선사들이 공동행위를 한 후 △30일 이내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 △신고 전에 합의된 운송조건에 대해 화주단체와 정보를 교환하고 협의해야한다"며 "(선사들이)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으므로 법 적용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일부 선사들은 18차례 운임회복 신고 내 120차례 운임합의가 포함되므로 신고할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공정위는 "18차례 신고와 120차례 운임합의는 별개로, 운임회복과 최저운임은 다른 운임인상 방식"이라며 "선사들은 화주단체와의 협의를 회피할 목적으로 최저운임을 합의했음에도 운임회복으로 신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해 9월 해운사 간 담합과 관련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전원회의(법원 1심 역할)에서 과징금이 줄어든 것과 관련,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이번 제재 결정은 해운업의 특수성, 수입 물량 관련 항로에 이번 담합행위가 미치는 정도가 제한적인 점을 고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사진 제공=공정거래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