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녹지병원 내국인 진료 제한 위법"...영리병원 개설 단초될까

영리병원과 의료 민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 될 영리병원을 개설할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공의료 강화 공약에도 의료 민영화가 포함됐다는 시각이다.

녹지제주, 개설 허가·진료 제한 소송 전부 승소
6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은 지난 5일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낸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위법이라는 이유에서다.


녹지제주는 국내 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추진중이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와 개설 허가, 내국인 진료를 두고 소송전을 벌인다.

녹지제주는 2017년 제주도에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면적 1만7679㎡)의 녹지국제병원개설 허가를 신청했다. 제주도는 2018년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부 허가를 내줬다.

녹지제주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조치에 반발하며 소송을 냈다. 이번에 제주지법은 해당 소송에 대해 제주도가 내세운 내국인 진료 제한이 법령상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고 봤다.


앞서 녹지제주는 제주도를 상대로 낸 개설허가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녹지제주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다는 조건이 의료법 위반 논란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며 3개월이 넘도록 개원하지 않았다. 의료법 제64조에 따르면 허가 후 3개월 동안 정당한 사유없이 병원을 개설하지 않으면 허가 취소가 가능하다. 이를 근거로 제주도는 개설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1월 대법원은 "예상치 못한 조건부 허가와 허가 지연으로 개원 준비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2심 재판부의 판결을 확정하며 녹지제주의 손을 들어줬다.

"한 병원만의 문제 아냐"...의료계·시민단체 우려
실제로 두 판결에 따라 녹지제주가 국내 1호 영리병원을 개설한 가능성은 낮다. 이미 녹지국제병원 지분 75%를 국내 업체 우리들리조트의 자회사 디아나서울에 넘겼기 때문이다. 디아나서울은 암, 난임, 세포치료 등 스마트병원의 인프라를 갖춘 비영리 병원 '우리들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판결이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 될 영리병원을 개설할 단초가 될 수 있다. 영리병원은 의료계에서 오랜 기간 논란을 일으킨 문제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수익을 얻기 위해 병원을 고급화하고 의료서비스가 향상되며 고용도 늘어날 것이란 찬성 의견이 있다. 반면 재벌의 투자처로 전락해 의료 공공성이 무너지고 영리 목적에 따라 고가 진료를 유도해 의료비가 높아지는 부작용이 따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의료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판결에 반발한다.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앞으로 모든 영리병원이 내국인도 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매우 심각하게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과 관련 "영리법원 도입을 부추기는 판결"이라며 "영리병원의 도입은 한 병원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의료시스템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돈이 되지 않는 필수 의료과목을 퇴출시킬 뿐 아니라 지방 중소 의료기관이 연이어 폐업하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져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 이번 판결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과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당선인은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립대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분원 설치를 꼽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의대 신설, 공공병원 신축 등을 제시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내국인 진료가 가능한 영리병원이 문을 열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높은 접근성으로 진료받았던 의료시스템에 붕괴가 생기고 부에 따라 의료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와 동일하게) 상급종합병원의 분원을 설치하는 것도 분명히 민영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